시작하며: 모르면서 묻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다.
인공지능에게 질문하면 답은 알아서 만들어 주는 세상이 왔다. 제대로 된 질문을 하는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볼 시간이 왔다고 생각했다. '고수의 질문법'이라는 제목에 이끌려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순식간에 읽었다. 저자의 글솜씨가 훌륭하다. '질문'이라는 키워드로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다만 질문하는 '방법'에 초점을 맞추었다기보다는 질문과 관련된 저자의 경험과 성찰들을 엮어 낸 에세이에 가깝다고 느꼈다.
이 책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질문하는 능력이 중요한 이유 및 다양한 질문의 사례들"
위의 한 문장을 총 4개 장으로 구성하면서 다양한 질문의 사례들을 보여준다. 1장에서는 '나를 채우는 질문'에서는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들을 보여준다. 2장에서는 질문을 통해 자연스러운 대화 분위기를 만드는 등 타인과 관계를 짓는 질문법을 알려준다. 3장에서는 업무에 있어서 핵심을 짚어내는 정확한 질문을 던지도록 돕는다. 4장에서는 리더를 위한 질문으로서 구성원의 능력과 동기를 끌어내고 조직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의 마지막에는 저자가 보여주는 많은 예시 질문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고수는 결국 질문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저자는 "모르는 것은 반드시 되물어라"라고 말한다. 불치하문 (不恥下問) ,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는 이 말을 수치불문 (羞恥下問)으로 바꾼다. 모르면서 묻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라는 말이다.
내 삶에서 만난 질문들은 대부분 공격적이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누군가의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상황은 대부분 곤란한 상황이었다. 당장 떠오른, 내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는 질문들을 열거해 보았다.
"죽을래?", "해 보자는 거냐?"
"죄송하면 군생활 끝나냐?"
"니네 동기들은 왜 그러냐?"
"지원 동기가 뭔가요?"
"문을 왜 늦게 열어?"
"2세 소식은 아직이냐?"
부정적인 것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는 특징을 감안해도, 내게 있어서 질문은 나보다 잘난 사람이거나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던지는 질문인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또한 질문받고 나면 고통과 불쾌감이 뒤따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질문받는 것은 물론 질문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싸움의 시작이 대부분인 경우가 많았고,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면 합격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또한 무슨 대답을 하든지 소용없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이 책에 의하면 위의 질문들은 진짜 질문이 아니다.
사람들은 잘못된 질문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최근 어때?'라는 질문은 최악의 질문이다. 상대에 대해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으면서, 모든 것을 알아서 다 말하라는 의미에 질문이기 때문이다. 또한 아예 '질문도 아닌 질문'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어떤 질문이 '좋은 질문' 일까?
상대방의 관심사, 최근의 노력, 내가 생각한 상대방의 의도 등을 가능한 먼저 알아본 후에, 채워지지 않은 부분을 묻는 것이 질문이다. 즉, 먼저 알아본 후에 질문하는 것이다.
'나는 당신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질문이 좋은 질문이다. 이 책에서는 아무것도 질문하지 않는 사람, 질문할 것이 없는 사람과의 관계는 무의미한 관계라고까지 말한다.
저자는 질문 같지 않은 질문을 받으면 그냥 무시해 버리라고 조언한다.
음..
과도한 느낌이 드는 부분도 있지만, 공감되는 내용이 무척 많았다. 질문에 있어서 큰 깨우침을 얻었다. 그리고 혹시 내가 최악의 질문을 남발하는 사람은 아닌지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진정한 앎을 위해서는 다각도의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나는 평생에 걸쳐 일희일비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해 왔다. 깊고 무거운 사람이 되고 싶다. 아침에 울다가 저녁에 웃는 내 자신을 극도로 혐오한다. 천성이 가벼운 내 자신과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이런 나에게 책에 실린 '일희일비하는 이유'에 대한 언급이 무척 반가웠다.
저자는 지식과 견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오락가락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양한 경우의 수를 알고, 자신만의 의견이 정립되어 있으며, 문제 해결 방법들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진정한 앎이며, 앎이 있다면 일희일비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진정한 앎을 위해서는 스스로 던진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단순히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암기 수준)과 진정한 앎은 다르다. 또한 그저 익숙한 것(단순 반복)과도 구분해야 한다.
그럼 대체 어떻게 해야 진정한 앎에 도달할까?
핵심을 알면서 그 배경 또한 알고, 역사적인 흐름과 인간에 대한 이해까지 덧붙여 통찰에 이르러야만 진정한 앎이다.
그런데 핵심이 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저자는 독서를 예를 들어 설명한다.
진정한 독서가 되려면, 한 문장으로 요약되는 독서가 되어야 한다. 책에 있는 좋은 것들을 버리고, 가장 좋은 것을 '골라내는 것'이 바로 핵심을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래서 나도 이 포스팅의 서문에 한 줄 요약을 시도했다.)
어떤 화두를 갖고 사느냐가 인생을 결정한다.
일에서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할 때, 우리는 힘들다고 느낀다.
이 말을 거꾸로 하면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면 고된 일도 힘들다고 느끼지 않는다는 말이다. 저자는 일하면서 의미를 찾는 질문을 던지라고 말한다.
"인류를 달에 보내는 일을 돕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던 미국의 어느 청소부의 대답이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의 내 일이 갖는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먹고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다른 의미는 무엇이 있을까? 어떻게 의미를 찾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물음표가 떠올랐다. 아마 나의 질문 욕구를 자극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단 하나의 질문에도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마음속의 조급증이 느껴졌다. 나는 누가 '답을 알려줬으면' 하는 마음이 아직도 크다.
받아 적은 책에 실린 질문의 예시를 조금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저자는 "질문이 곧 답이다. 매일 최고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닮아가게 된다."라고 말한다. 질문을 품고 살아야 한다. 다양한 관점을 가진 사람의 삶은 한결 풍요롭다.
내게 가장 많은 질문을 하는 사람은 누굴까?
회사에 처음 입직했을 때, 엄청난 질문을 받고는 했었다. 고향은 어디고,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애인은 있는지 등등의 질문을 받았다.
사생활의 영역을 비집고 들어오는 질문도 많았고, '호구 조사'를 하는 것이 썩 좋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입사 후 8년이 지난 지금은 업무적인 내용 외에는 아무도 내게 질문을 하지 않는다.
지금 내게 가장 많은 질문을 하는 사람은 누굴까?
떠오르는 것은 나의 엄마다. 밥은 먹었는지? 부족한 반찬은 없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좋은 소식은 없는지? 담배는 끊은 건지? 운전은 잘하고 다니는지? 세차는 했는지? 집안일은 좀 하는지? 승진은 언제인지? 얼굴에 로션은 바르고 다니는지?
엄청난 질문 공세를 펼치신다.
상대방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 바로 질문이라는 저자의 주장이 입증된 셈이다. 새삼 감사한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든다. 답변을 반복하다가 나도 모르게 귀찮아하거나, 신경질 적으로 대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엄마에게 어떤 질문들을 던졌을까?
아픈 곳은 없는지, 병원은 가셨는지, 순순이(강아지)는 잘 있는지를 묻고는 했는데, 다른 질문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반성해야 할 것 같다.
책에서는 상대의 관심 분야와, 내가 질문하려는 목적을 명확히 준비하라고 말한다. 나는 너에 대해 많이 알아봤고 관심도 들였으니 좀 더 가르쳐 달라는 질문이 좋은 질문이다. 최악의 질문은 준비되지 않은 질문이다.
내 이야기보다는 상대로 하여금 대화의 주도권을 쥐게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 그것이 자연스러운 대화의 분위기를 만다는 핵심 기술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상대가 하게 만드는 것이 고수의 질문이다.
마치며: 답만 찾아 헤매는 대신 질문하는 사람으로
내 인생에서 오랜 기간의 가장 많이 연습한 것 중 하나가 바로 '답을 찾는 것'이었다. 대부분 암기에 의존하는 객관식의 연습이었다. 오답을 걸러내고, 정답을 찾는 것의 반복이었다. 정작 문제가 뭔지 차분히 찾는 것은 연습해 볼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급하게 답만을 구하는 나쁜 습관이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분명 질문의 기회도 많았을 것이다. 아마도 대학 때였나,
토론을 위해 반드시 질문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지만, 나는 준비되지 않았다. 당시 내 수준 낮은 질문은 무지와 무능력을 드러내고는 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차라리 '침묵이 금'이라는 듯이 행동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격언도 있지 않은가. 신병 생활 당시도 나는 '모르면 좀 물어봐라' 라며 혼난 적도 많았다.
질문하지 않는 습관은, '말해 주지 않으면 모르는 사람' 이 되는 것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세상은 묻지 않은 것을 알려줄 정도로 친절하지 않다. 가족 간에도 말이다.
질문을 해야 알 수 있는 것임을, 나는 왜 몰랐을까.
이 책에는 정말 많은 질문들이 있다. 그 질문들에 답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 같다. 특히 이 책의 1장의 내용만으로도 이 책 한 권의 가치는 충분하다.
마음에 드는 질문들을 노트에 필사했다.
틈틈이 혼자 조용히 질문을 던지고, 답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 부끄러움 없이 질문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모르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라고 되내이며, 이만 글을 마친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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