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며 : 불교의 서양 버전, 명상을 통한 가르침
불교는 인도에서 시작되어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전파되었다. 현각 스님은 미국 하버드 대학 출신으로 한국 불교의 숭산 스님의 제자다. 그리고 현각 스님은 한국 불교계를 떠나 독일에서 자신만의 수련을 전파하고 있다. 그런데 그분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 이 책의 저자다. 그리고 다시 번역된 것을 한국인인 내가 읽었다.
지구를 돌고 돌아 전해진 지혜인 셈이다. 현각 스님이 처음 스승인 숭산 스님을 만났을 때, 들은 얘기가 바로 "너는 누구냐?" 였다고 한다. 대답을 해도 또 "너는 누구냐"라고 계속 질문이 돌아왔다고 한다. 계속 여기에 대답을 하다가 수행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 왜 중요한가?" 인 것 같다.
이 책은 1장에서는 저자의 이야기와 함께 왜 나에게 집착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2장에서는 마음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고, 마음이 결국 파도와 같이 수도 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고 말한다. 3장에서는 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나 자신과 동일시하고 있는 것들을 하나씩 껍질을 벗겨낸다. 4장과 5장에서는 실전 명상의 방법을 알려준다.
나는 나의 행복이 뭔지, 성공이 무엇인지 명확히 규정하지 못해놓고 있었다. 꽤나 오랜 시간 헤매고 있었지만 끝끝내 40대가 되어서도 명확하게 규정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알려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고통을 다루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다.
이 책의 핵심은 바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대답하는 것이다. 저자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책에 실린 내용을 읽고 이해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학창 시절 불교에 대해 공부하면서 '집착'이 모든 고통의 원인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나는 이 집착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계속 집착하며 살아왔다. 어머니, 와이프, 돈, 건강, 그리고 수많은 내 주변의 사람들에 대한 애착...
이 모든 게 집착이고, 집착을 모두 놓아버리면, 결국 '살아서 뭐하냐' 라는 결론으로 귀결되곤 했다. 결국, 자연스럽게 불교의 철학을 뜬구름 같은 지혜 혹은 '살아가는 데 필요하지만 완전히 실천할 수는 없는 것'으로 알고 넘어갔다.
살면서 집착을 안할 수는 없으니, 하긴 하되 '적당히 하는' 지혜로 살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저자는 '잘못된 동일시' 라는 보다 구체적인 원인을 지목한다. 우리는 잘못된 동일시를 통해서 스스로에 대해 집착하고 있다. 누군가에 의해 주입된 생각, 어린 시절 경험으로 입력된 프로그램을 진짜 나라고 생각하고 동일시하고 있다. 내가 아닌 것을 나라고 믿는 바람에 고통을 겪게 된다.
저자는 이런 잘못된 동일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감정적 되새김에서 벗어나고, 하나씩 잘못된 동일시를 벗겨내다 보면, 남는 것은 '텅 비어있음'이다. 이 텅 비어있음이 반야심경 등의 불교에서 말하는 '공' 혹은 '무아'인 것 같다.
'관찰자' 자신으로서의 존재가 진정한 나라고 말한다. '공'을 관찰자라고 표현하는 것이 신기했다. 명상을 통해서 관찰해야 할 대상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다뤄야 할지를 알려준다. 대부분은 그냥 '지켜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효과가 있다.
생각 습관 : 좋고 나쁨 분별, 자기 생각을 대하는 태도, 중요한 판단, 자기 비난 대신 다정하기, 문제를 보는 거리감 유지하기, 생각의 악순환 인식하기
감정 습관 : 감정을 거부하지 말고 귀 기울이기, 힘든 순간과 긴장 및 불안의 순간을 깨닫기, 감정의 책임을 전가하지 말기, 여지를 주지 말고 쫓아내기, 감정을 회피하지 말고 머물게 하기
행동 습관 : 무의식적으로 반응하지 말고 명상하기, 짧은 시간 활용하기, 미디어 소비하는 시간 줄이기, 하루하루를 흘리지 말고, 멈춰서 순간을 경험하기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본성으로서의 나'
내가 연극의 주인공이 아니라 관객임을 깨달음으로써, 내 삶은 비극이어도, 희극이어도 상관 없어지게 된다. 저자는 반문한다. 행복한 감정만 느끼는 것이 과연 좋은 삶인가?
시작부터 끝까지 행복하기만하고, 웃기만 하는 드라마를 떠올려 보자. 과연 좋은 작품인가? 반지의 제왕 엔딩을 떠올려 보자. 오히려 모든 불안과 긴장감이 해소된 '행복한 순간'이 작품에서 너무 길면 작품 전체가 지루해진다.
저자에 따르면 슬픔은 커다란 가르침과 소중함이 무엇인지 알려 주는 감정이다. 고독은 본성을 일깨운다. 분노는 에너지로 바꿀 수 있다. 죄책감은 치유 임박의 신호다. 고통은 나를 위해 존재한다.
즉, 감정 자체는 모두 소중하다. 삶을 위하여 '좋은 감정' 만이 필요하다는 것이야말로 망상이다. 좋지 않은 감정 자체는 고통이 아니다. 감정을 억압하고 회피하는 것이야말로 고통이다.
조선 시대 유학자들은 불교가 현실과 질서를 외면하는 종교라고 비난했다. 사실 나도 마찬가지의 입장이었다. 너무 극단적인 것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피터 베르의 이론에 따르면 불교 교리는 오히려 현실을 참다운 현실로 인식하고, 사랑을 전파하는 가르침이 된다. 그것은 불교를 종교가 아닌 '명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 한국 불교는 중국을 거치면서 실용화되었고, 한국을 거치면서 다시 '구복 신앙'화 된 것이 많다.
예를 들면 내가 처음 불교를 접한 초등학생 시절, 엄마가 가지고 계시던 불교 관련 서적에는 외워야 하는 진언이 무척 많았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옴 가마라 사바하'라는 진언이다. 그걸 외우면 좋은 친구가 생긴다고 했다. 나는 수년간 그 진언을 외웠다.
게다가 아버지가 투병 생활을 하시면서 '소원을 들어주는 주문'을 매일 외웠다. 간절한 마음으로 수년간 외웠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주문 외우는 것도, 불교를 믿는 것도 그만뒀다.
이 책을 통해 만난 서양인의 불교에는 그러한 종교적인 믿음이 모두 빠졌다. 현각 스님이 한국에서 배워가고, 다시 독일에서 피터 베르에게 전수된 가르침은 독일 식의 불교가 되었다. '나의 존재'에 대해 탐구하고, '자아'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파고 들어간다. 그 결과 '관찰자'라는 나에 집중함으로써 고통과 망상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집중한다.
이 책의 핵심은 바로 '명상'이다. 명상을 통해서 동일시를 털어내는 것이다. 그렇게 털어내고 나면 채워지는 것이 행복과 사랑이다. 저자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세상도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마치며: 영적인 성장을 도와준 책
사실 처음에는 이 책을 읽고 싶지 않았다. 건성으로 읽었다. 그런데 '마르코'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에서 깜짝 놀랐다. 완전히 나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책 초반부에서 이미 나는 이 책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저자의 수련경험을 기반으로 한 책이기에 내용이 무척 구체적이고, 읽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단순하지만 정말 많은 것을 준 책이다. 이 책은 나의 감정, 그리고 나의 삶에 대해서 뭔가 막혀있지만 그게 무엇인지 몰라서 막연하게 답답했던 부분을 뚫어주는 책이었다.
나는 일기장에 매일 '영적인 성장'을 하자고 적어놓으면서도, 정작 영적인 성장이 무엇인지조차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 명상을 하자고 생각하면서도, 구체적인 방법을 몰랐다. 긍정적인 태도, 힐링, 이 정도의 느낌만으로 항상 뒤로 미루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명상을 왜 하고, 왜 좋으며, 어떻게 하는지, 하다가 어떤 게 힘든지까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내 영적인 스승으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이 책의 저자인 것 같다.
'확언을 수백번 하면 마술처럼 이루어진다'라는 류의 책을 극도로 혐오한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런 내용이 아니었다. 일단 한번 직접 해 보라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결이 다르다.
"일단 한번 해봐, 그럼 이런 경험을 할 텐데, 그땐 이렇게 해"라는 책이다. 구체적인 안내서랄까.
그는 자신의 감정과 내면을 '탐구하라'라고 말한다. 끝없이 관찰하고,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나도 경험하고 싶다.
'동일시'에서 벗어나고, '집착'을 벗어버리게 되며, '공'을 경험하면서 평화를 느끼고 싶다. 앞으로 하루 10분이라도 명상을 해 보아야겠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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