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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김용성의 소설 "도둑일기" 리뷰 :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던 시대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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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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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며 : 미완의 작품을 읽다.

김용성 작가의 소설 <도둑일기>는 6․25 전쟁 후의 서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성장 소설이다. 고아가 된 삼 형제의 성장과정을 긴장감 넘치고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어서 마치 드라마를 보고 있는 느낌이 들게 해 주는 소설이다. 하지만 본래 4부작으로 되어있으나 내가 읽은 부분은 1부뿐이라는 사실이 아쉬움을 남게 한다. 출판사 서평을 읽어보면 본래 4부작이었으나, 3부까지 밖에는 발표되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 작가의 개인적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도서관에는 3부까지의 내용은 없었고 1부인 이 책만 있었다. 

잘 짜인 구성과 극적인 장면 묘사는 사실적이어서 영화화해도 될 것 같다. 드라마와 영화가 아닌 글로 읽는 것은 또 다른 매력을 갖고 있다. 잘 만들어진 드라마 작품들을 보면 아역배우들이 대활약하는 경우가 많다. 성인이 되면서 오히려 재미가 없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이 작품의 결말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증을 낳게 한다.

끼니를 걱정하던 전후의 삶을 남긴 역사적 연대기

소설의 첫 장면에서 피난 중에 죽음을 맞이했던 어머니의 유언은 ‘절대 도둑질을 하지 말 것이며, 고아원에 가지 않으려면 항상 붙어 다니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제목에서와 같이 형제는 결국 크고 작은 도둑질을 하며 성장하게 된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그 시절을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부모 없는 가난한 아이들이 성인이 되기까지 생존하기 위해서는 선택의 폭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당시는 부모가 살아있는 가정도 힘겹게 살아가는 시대였음을 생각하면, 어쩌면 필연적인 귀결인지 모른다. 전쟁 이후 폐허에서, 그 무엇보다도 우선시되는 것은 바로 생존일 것이다. 그렇기에 기존의 도덕이나 규범, 법 등의 사회적 장치들은 그 기능을 정지하고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생태계의 법칙만이 적용된다.

그러한 상황에서 '삶'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중압감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을 것이다. 이 작품에는 당시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당시의 삶을 간접적으로나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전쟁의 총성도 무섭지만, 아마도 이러한 인간성의 상실이야말로 전쟁의 두려움의 본질이 아닐까. <도둑일기>에는 당시 사회의 이러한 점이 잘 반영되어있고 또한 그러한 이기적인 인간이야말로 어쩌면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생각하게 한다. 작품 속에는 생존을 위하여, 욕망을 위하여 일그러지는 인물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럼에도 나는 이 작품을 크게 더럽다거나 불쾌감을 느끼지 않고 어딘가 친근감을 느끼며 읽었다. 그것은 극적인 상황에서도 시종일관 유지되고 있는 ‘순수성’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순수성의 세계는 흡사 황순원의 소설에서의 느낌과 비슷했다.

순수한 시각의 서술자, 현실을 알아가는 소년들의 이야기 

소설의 중심 소재가 주인공의 성장 과정이라는 점에서 황순원의 소설과 이 소설은 공통점이 있다. 또한 큰 틀을 보면 ‘선과 악’의 대립 구도가 제시되고,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겪는 '성장 의례'가 되는 기념비적인 사건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유사하다.

다만 이 작품은 특히 전쟁 후의 냉혹한 현실이 소년의 눈에 어떻게 비추어졌는가를 전하여 준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어서 그 고난이 더욱 아프게 느껴지게 한다. 이러한 설정은 독자의 입장에서는 '관객'이 되어 안타까움을 느끼며 등장인물들의 행동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황순원과 또 차별되는 점은 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현실인식과 대응 양상에 있다. 황순원의 문학은 대체적으로 ‘선과 악의 대립구도와 그러한 과정을 통한 성숙’의 틀을 가져가되, 결국에는 선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이에 비해 김용성 작가는  주인공을 삼 형제로 설정하고 현실에 대한 보다 다양한 반응들을 함께 보여준다는 점에 있어서 차이점이 있다.

삼 형제 중 에서 맏형은 순수성을 상실하고 현실과 타협해 나간다. 반면에 셋째는 순수성을 간직하며 현실과 싸워나가는 인물이다. 한편 둘째는 이야기의 화자이기도 하면서 성격은 다소 우유부단하면서 오락가락하는, 중간적인 성격으로 설정되어 있다. 얼핏 보면 큰 역할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작가는 둘째에게 소설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중요한 임무를 부여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삼 형제의 구성은 작품의 중립성을 지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현실에 타협하는 인물을 악역으로 설정하여 타도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가족이자 큰 형으로서 두 형제를 지켜주는 존재이다. 이러한 설정은 작중 인물들이 입체적이고 나름의 이유를 가진 존재가 되도록 하였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이 작품은 신파로 흘러가거나, 혹은 작위적인 이야기가 될 위험성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용성 작가는 그러한 위험성을 삼 형제라 는 각각의 다른 유형의 주인공 설정을 통해서 감소시켰다. 그 결과 전체적으로 서술자의 가치 판단 기준은 중립성을 간직하면서 판단은 독자에게 맡겨진다. 이러한 점에서 작가가 상당한 고민의 과정을 겪었음을 알 수 있었다.

마치며: 삶이라는 과제를 각자 해결해 나가는 것

이 작품을 읽으며 새록새록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물론 이 작품속 형제들처럼 생존 자체의 위협은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배 타러 해외로 나가셔서 집에 자주 오지 않으셨고, 어머니께서는 홀로 두 형제를 키우기 위해 일을 하셨다. 학교를 다녀오면 집에는 밥상과 함께 어머니의 편지가 놓여 있었다. "사랑하는 두 아들에게"라는 제목의 글에는 항상 동생과 싸우지 말고 잘 돌봐주고 있으라는 내용이 있었다. 

어머니가 오시기까지 동생과 함께 보낸 하루하루가 모험이었다. 특히 동네 골목의 형들의 따돌림과 괴롭힘이 가장 힘들었다.  신기한 것은 부모님이 계실 때엔 그렇게 동생과 다퉜음에도 둘만 있을 때에는 다투는 일이 없었다. 이 작품 속 맏이처럼 나 또한 장남으로서 동생을 책임져야만 했다. 하지만 오히려 동생에게 내가 의지하는 면이 컸다. 나는 겁이 많고 소심했지만 내 동생은 장난꾸러기였다. 다치거나 사고를 치기도 했다. 지금 이렇게 성인이 되서 떠올려 보면 다시 돌아간다면 더 좋은 형이 될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 섞인 소중한 추억으로 남는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셋째 동생 대조되어 점점 괴물이 되어가는 맏형의 이야기를 읽으며 과연 내가 작중 인물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두 인물 모두 장단점이 있는 태도다. 김용성 작가는 이 작품 속에서 작중 인물 그 누구도 비난할 수는 없게 만들어 놓았다. 장남은 수단을 가리지 않는 태도가 문제이지만 험난한 세상과 배고픈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장남으로서 두 동생의 부모 역할을 하기 위해 나름대로 생존의 방법을 찾은 것이다. 

모두는 결국 각자의 방식으로 시대와 세상이 준 삶이라는 과제를 해결해 나갈 뿐이다. 다만 어떤 방법이 가장 나은 방법인가에 대한 고민의 시간을 갖게 만든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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