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작하며
이 책은 아프리카 남부 칼라하리라는 오지에서의 생태계 연구 과정의 기록이다. 칼라하리라는 장소는 평생 단 한번 들어본 적이 있다. 책에서 본 적이 있다. 약 50만 년 전 현재 모든 인류의 어머니인 '이브'가 나타난 곳이라고 한다. 그리고 기후변화로 살아가기 힘들어지게 되자, 그곳의 초기 인류는 전 세계로 이동하게 된다.
책 속의 칼라하리는 엄청나게 혹독한 건기를 가진 자연환경이었고, 사자와 하이에나 등 야생동물들만 남아있는 '오지'였다. 이 책의 공동 저자인 델리아 오언스와 마크 오언스는 결혼식을 마치자마자 20대의 나이로 함께 1년간 일을 하면서 돈을 모으고, 전 재산을 팔아 경비를 만든 후 칼라하리로 가서 무작정 캠핑 생활을 하며 연구를 시작한다.
지난번 《여섯 번째 대멸종》을 읽은 이후로, 기행문 형식의 글을 좋아하게 되었다. 기행문을 읽는 것은 독서가 가지는 '간접 경험'의 의미에 충실하다. 내가 갈 수 없는 곳의 방문 경험을 공유받고, 글을 통해 현장감과 감회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만히 서사를 따라 읽어가기만 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독서는 오랜만이었다.
사실 그동안 자기 계발서와 투자 관련 서적을 읽을 때마다 열심히 필기하고 적고 정리하면서 책을 읽었다. 그 과정 자체가 나에게는 마치 공부하는 것처럼 고된 작업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아프리카에서의 경험담이기에 흥미진진하게, 그저 쭉 따라다닐 수 있는 독서였다. 힐링의 독서였다. 중간쯤 읽은 시점부터 뒤늦게 어떤 리뷰를 해야 하나 싶어 메모를 했다. 하지만 노트 1장을 채우지 못했다. 오늘의 글은 어쩌면 감상문에 불과할 지도 모르겠다.
2.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다.
이 책의 저자들은 자신들의 꿈과 목표를 위해 아프리카로 날아간 '대단한 사람들'이다. 7년이라는 시간은 쉽지 않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나의 경우 9년 정도 수험생활을 해 보았기 때문에, 그 시간이 얼마나 긴지 실감한다. 인천에서 3년의 객지 생활도 나에게는 혹독했다. 그리고 대전으로 내려와서도 적응하는 데에 2년 정도가 걸렸다. 이들은 말조차 통하지 않는 아프리카라니.
또한 '축복받은' 사람들이기도 하다. 평생에 걸쳐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단 한 명이라도 누군가와 의기투합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런데 이들은 같은 꿈을 그리는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서로 사랑에 빠졌고, 결혼에 성공하여 평생의 반려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결혼 1주년을 맞이하여 함께 아프리카 오지로 떠났고, 1973년 ~ 1980년까지 함께 칼라하리에서 야영했다. 이 책도 공동으로 저술한 책이다. 두 사람의 열정과 사랑의 결실이 바로 이 책인 것이다. 예를 들면 1장~3장은 남편인 마크 오언스가, 4~5장은 아내인 데릴아 오언스가 작성하였다.
함께 여행을 가 보면 그 사람에 대해 더 잘 알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들은 7년간 아프리카 오지에 있으면서 다투는 날 들은 없었을까? 적어도 책에서는 싸우는 장면은 나타나지 않는다. 중간에 말라리아에 감염되어 아픈 장면이 나온다. 또한 사막 한 복판에서 차가 전복되어 하루종일 차를 수리하기도 한다. 또한 사자에게 사냥당할 엄청난 위기를 맞기도 한다. 비행기를 운전하다가 폭풍우를 만나 추락할 뻔한 장면도 나온다.
하지만 둘은 언제나 서로 아껴주면서 씩씩하게 이겨낸다. 나는 어떠한가? 내 평생 같은 꿈을 그리며 함께한 사람이 과연 있기는 했을까? 사실 이들처럼 꿈도 열정도 없기에, 같은 꿈이나 열정을 가진 사람을 만나보지도 못했다. 씁쓸하면서도, 부럽기도 하다. 아마 나랑 똑같은 사람을 만난다고 해도, 나는 그 사람을 좋아하지는 않을 것 같다.
3. 혹독한 자연을 이겨내는 생명력
칼라하리에서 묘사되는 건기의 혹독함은, 최초의 인류가 왜 이 장소를 떠나 전 세계로 이동했는지를 알게 해 준다. 6개월의 기간 동안 단 한 방울의 물도 내리지 않는 뜨겁고 마른 기간이 펼쳐진다. 낮에는 50도 정도의 무더위가, 겨울에는 영하의 엄청나게 추운 기온도 그렇다.
이러한 혹독한 자연 환경에서 사자, 하이에나, 자칼 등의 야생동물들은 굶주림과 갈증을 이겨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사자는 본래의 무리를 중시하는 습성을 바꾸어 무리를 서로 섞기도 한다. 한 번의 작은 사냥을 위해 60km가량을 쉬지 않고 이동하기도 한다.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몇 주를 버티기도 한다.
하이에나들은 자신의 새끼가 아니어도 서로 키우는 '공동 육아'를 하면서 어떻게든 새끼들을 돌보기 위해 애쓴다. 새끼를 한 번도 낳아본 적이 없는 하이에나가 부모를 잃은 새끼 하이에나를 입양하여 양육하는 장면은 이 책 전체의 명장면 중에 하나이다. 저자는 이 장면을 통해 청소동물인 하이에나가 굳이 무리 생활을 하는 비밀을 풀어냈다고 말한다. 이러한 '이타성'도 결국은 유전자 보존이라는 목표를 위하여 진화한 행동이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하이에나들은 썪은 고기뿐 아니라 뼈 조각, 흰개미 등의 벌레와 풀뿌리 등을 먹으면서 버틴다. 그렇게 우기가 돌아올 때까지 계속 버틴다. 우기가 되면 신기하게도 스프링복과 겜스복 등의 초식동물들이 나타난다. 이들은 혹독한 자연 환경을 이겨내는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그것은 수십 만 년 동안 생존해 온 비결일 것이다. 이들은 혹독한 자연에 절규하지 않는다. 자연에 적응하고 이겨내며 생존해 온 존재들이다.
4. 이들은 무엇에 절규하는가?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목인 칼라하리의 절규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곳의 동물들은 6개월간 물을 마시지 않고도 버텨내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었다. 칼라하리의 절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책의 후반부에서야 알게 되었다.
이들이 수 년간 연구한 사자가 죽는 장면은 너무나 허무하게 나타난다. 건기를 맞이해 먹이를 찾아 넓은 거리를 이동했고, 결국 자연보호구역을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벗어나자마자 한 사냥꾼에게 총에 맞아 죽어버린다. 수사자들은 같은 사자에게 죽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인간에게 살해당했다.
한편 누 떼들은 건기를 피해 수만 킬로미터를 굶주린 채로 북쪽으로 이동한다. 하지만 이들은 불과 호수를 2km 앞둔 장소에서, 인간들이 펼쳐놓은 울타리에 가로막힌다. 그 울타리를 돌아서 가는 과정에서 지친 많은 동물들이 죽는다. 그리고 울타리에 의해 인도된 끝에 물이 있는 지역이 나타나긴 한다. 하지만 그곳은 밀렵 허가지역이었다. 수천 마리가 떼죽음을 당한다. 천신만고 끝에 그 지역도 통과한 동물들은 수십 일을 더 이동한 끝에, 단 2~3분 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남쪽으로 이동을 시작한다.
처절하다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았고, 그것이 바로 '칼라하리의 절규'라고 생각했다. 물론 칼라하리가 속한 보츠와나는 그래도 전 국토의 20%가량을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중인 나라였다. 그런 나라가 과연 선진국 중에 존재하는가? 그렇기에 이들을 욕 할 수는 없다. 이 책의 저자들은 정부를 상대로 계속해서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고 설득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정작 이들조차도 박물관에 전시를 위해 많은 동물들을 박제로 만들어 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 부분에서는 저자들에게 조금 실망했다. 이중적이었다. 자신들이 연구하는 사자와 하이에나는 소중하고, 다른 동물들은 소중하지 않다는 것인가? 자연에게는 이들 부부조차도 결국은 '인간'인 것이다.
5. 마치며
7년 동안의 모든 성과와 모든 이야기를 460여 페이지에 모두 담지는 못했을 것이다. 다듬고 잘라낸 이야기였을 것이다. 이 책은 현장 연구 결과와 관련된 이야기는 거의 싣지 않았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의 에피소드들을 담은 책이다. 이 포스팅의 서문에서 밝혔듯이, 다른 책들과는 달리 그저 이들의 경험을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풍부한 경험이 되는 책이었다.
내가 보기에 이 책은 자연환경 보전을 촉구하는 글이라기엔 비판 의식이 적었다. 또한 순수하게 '동물의 왕국' 같은 자연 다큐멘터리로만 보기에는 부부의 이야기가 많았다. 이들이 겪은 '사실'들이 나열인 기행문으로 분류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책이었다. 벌써 50년 전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지금의 칼라하리는 또한 어떠한 모습일지 궁금하다. (직접 가 볼 용기는 없으니 또 누군가 다녀와서 전해줬으면 좋겠다.)
이 책을 덮고 나서 감명 깊었던 것은, 책의 맨 마지막 '감사의 말' 다음에 이 책의 등장인물들을 책에 수록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들이 이름 붙인 '스타', '캡틴', '머핀', '모펫' 등의 이름들이 마치 영화의 맨 마지막 크레디트 영상처럼 적혀있었다. 나는 그 어떤 장면을 읽는 것보다 마지막에 작성된 그 목록이 가장 감동적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의 진정한 등장인물들이자 주인공들은 바로 이 동물들이다. 나도 이 포스팅의 마지막을 이 책에 등장했던 동물들을 열거하면서 끝내고자 한다.
자칼, 스프링복, 박쥐귀여우, 사자, 갈색하이에나, 뿔닭, 표범, 겜스복, 마리코딱새, 박새소리치레, 줄무늬쥐, 뾰족뒤쥐, 땅다람쥐, 상반작, 바늘깃털핀치, 때까치, 코뿔새, 몽구스, 코브라, 능에, 치타, 들개무리, 영양, 기린, 타조, 아프리카 참새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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