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선택한 책
더 나은 결정을 내리도록 설계된, 의사 결정 프로세스를 제공해 주는 책이다. 저자는 의사결정에 있어 프로세스가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국에서는 2013년에 출간되었다. 이 책에서 제안하고 있는 WRAP원칙은 후회 없는 선택을 하기 위한 4단계로 구성된 의사결정 프로세스의 약자이다. 구체적으로 각 단계를 보자면 WIDEN (선택지 넓히기), TEST REALITY(현실성 검토하기), ATTAIN DISTANCE(거리 확보하기), PREPARE TO WRONG(틀릴 준비하기)의 순서로 이어진다.
이 책은 총 5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으며, 첫 장에서는 의사결정을 방해하는 네 가지 악당을 소개한다. 두 번째 장에서는 첫 프로세스인 선택지 넓히기, 세 번째 장에서는 가설 검증하기, 네 번째 장에서는 거리두기, 다섯 번째 장에서는 실패를 준비하기 원칙을 설명한다. 굉장히 심플하게 구성하였고, 기억하기 쉽게 짜여 있다. 저자가 제시한 WRAP원칙은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원칙이기에 삶의 도구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특히 읽는 데 있어서도 만족스러웠다. 구성 상의 특징을 살펴보면 우리가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데 실수하는 이유를 먼저 분석한다. 의사결정 과정을 방해하는 네 가지 장애물을 찾아내고, 이를 극복하는 해결책과 사례를 제시한다. 이러한 3중 구성으로 4가지 단계별 원칙(WRAP프로세스)을 소개하며, 중간중간 책의 내용을 상기시키는 배려와 요약 제시를 통해 잘 따라오도록 친절함을 베풀었다. "후회 없음"을 위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했고, 허튼 소리나 필요 없는 문장이 전혀 없었다. 당장 나의 의사결정 프로세스에 적용해보고 싶다.
- 저자
- 칩 히스, 댄 히스
- 출판
- 부키
- 출판일
- 2022.09.20
괴물 같은 힘을 가진 인간의 오류들을 무찌를 WRAP원칙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끌리는 것들에 선택의 근거를 두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생각보다 많이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의식적인 기준을 두고 선택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세스가 무척 중요하다. 어떤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느냐가 같은 자원과 에너지 투입 대비 결과를 전혀 다르게 만든다.
이 책의 저자들은 평범한 사람과 톱스타의 차이는 단 1/12 뿐이라고 한다. 기술과 연습, 재능의 차이가 1/12에서 갈린다. 재능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기술과 연습은 우리가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프로세스이다. 우리 뇌의 인지적 한계로 인하여 의사결정 과정에서 일으키는 네 가지 문제들이 있다. 열거해 보면 선택지 제한, 정보 제한, 단기 감정, 결과 과신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괴물들을 무찌르는 프로세스라는 용사를 제시하고 있다. 이 용사는 바로 WRAP 원칙이다. 앞에서 언급했던 선택지 확대(Widen option), 가설 검증(test Reality), 거리 두기(Attain distance), 틀릴 때를 대비하기(Prepare to wrong)가 바로 그것이다.
직관적인 느낌과 의견은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이 전제에 보이지 않는 정보의 함정이 있다. 우리 뇌에서는 스포트라이트효과(접근성 좋은 정보와 그 해석 위주에만 인지하는 것)가 발생한다. 자동 조종 인형이 되지 말고, '수동 스포트라이트'를 의식적으로 실행하는 것이 바로 이 책의 핵심이다. 직관은 세심하게 훈련해 온 영역에서만 정확하게 발휘된다. 이를 훈련하려면 예측가능한 환경이 필요하다. 수없이 선택을 반복하고, 즉각 피드백이 있어야 한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나는 가능한 한 선택을 피해왔다. 주변 사람들의 의견에 동조하는 성격으로 거듭났다. 물론 이런 성격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중요한 결정에 있어서 그들은 아무런 책임을 져 주지 않는다. 차라리 잘못된 선택일지언정, 수없이 선택을 반복하면서 피드백을 쌓아왔으면 어땠을까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하게 됐다.
편협함(선택지 제한) 무찌르기:선택지를 넓혀라 (Widen)
저자는 "할까, 말까?"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우리는 편협한 사고 틀에 갇혀버렸다고 말한다.(편협함 경보) 이 부분을 읽으며 사실 많이 놀랐다. 내가 항상 하는 고민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 중이라면, 우리의 뇌는 틀에 갇혀 다른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좋은 예로는 도박심리를 들 수 있다. '모 아니면 도', '대박 아니면 쪽박' 이런 식의 사고는 끔찍한 판단을 낳는다. 이와 관련해서 책에는 가짜 선택지 호르몬에 취한 결정 프로세스(결심 진술형 결정, 가부판정형 결정, 원천봉쇄형 결정 등을 제시한다. 자세한 내용은 책에서 읽어보시기를 추천한다.) 등, 편협한 결정의 풍부한 사례를 제시한다.
이러한 틀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우선, 선택지를 아예 없애버리라고 말한다.(선택지 백지화) 기존 선택지는 모두 아니라고 가정하고, "둘 말고 다른 대안은 없는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려서,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흔히들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검토해!"라는 말이 곧 이 뜻인 것 같다.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라는 말을 흔히 접한다. 이 말은 편협한 사고 틀에서 벗어나 행동반경을 넓히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또 다른 대안은 "둘 다 하기"이다.(멀티트랙킹) 이는 둘 중 하나만 해야 한다는 것을 거부하고, 모두 실행함으로써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심지어 안전, 성장 등의 마인드셋도 멀티트래킹 하라고 말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서로 모순되는 대안 중에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힌다. 이 경우 둘 모두를 실행해 보는 것이다. 그런데, 한정된 자원으로 모두를 하는 것은 낭비가 아닐까? 우리나라 속담에도 두 마리 토끼를 쫓지 말라는 말이 있지 않나? 모순되는 두 가지를 동시에 모두 하는 게 안 되니까 고민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이에 대해 저자는 비효율을 감수하고서라도 다각도의 시각을 얻는 이점이 더 크다고 말한다. 우선 자신의 유일한 선택에 대한 애착과 모욕감 등을 방지하며, 쓸모없는 감정적 소모 발생을 막는다. 또한 자아의 과도한 개입을 방지하고, 대안 간의 비교를 통한 '큰 그림'을 이해할 수 있다. 한편 결정을 내리는 속도도 올라간다는 장점이 있다. 실패에 대한 대비책 효과, 플랜 B 역할을 두 대안이 맡아 주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지 편향을 쉽게 고칠 수는 없다. 편협한 사고 틀에 빠지면 높은 집중력이 있는 사람의 장점이 오히려 손해를 입힌다. 집중력은 선택지 분석 시에는 탁월하나, 선택지 탐색 시에는 끔찍한 결과로 이끌 수 있다. 하지만 일단 사고틀에 갇힘을 인식한다면, 빠져나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앞서 말한 방법을 통하여 시야 확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선택지 확장의 숫자가 두 개 이상 나올 때까지, 계속 탐색해야 한다. 단, 가짜 선택지는 안된다. 의미 있는 구별이 가능한 선택지이어야 한다. 선택지들에 대한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각각의 선택지들이 진짜임을 알리는 좋은 신호이다.
확증 편향(정보 제한)을 무찌르기:가설을 검증하라 (Reality test)
편협한 사고의 틀을 벗어나, 다양한 대안을 확보했다면? 이제 진짜 시작이다. 내가 보기에 두 번째 프로세스가 가장 부지런해야 하고 성실함이 요구되는 단계이다. 다양한 대안들의 예상 효과, 장단점, 리스크 등을 면밀히 분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토록 부지런해야 하는 이유는 판단 근거가 되어줄 팩트를 최대한 많이 수집하기 위함이다. 윌리엄오닐은 "성공투자법칙"이라는 책의 마지막에 무엇보다도 "최대한 팩트를 확보하라"라고 신신당부하기도 했다. 우리가 팩트를 모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확증 편향의 장애물을 넘어서기 위함이다. 확증 편향이란, 기존의 믿음을 강화시켜 주는 정보만을 인식한다는 뇌의 인지적 한계를 말한다. 그 결과 왜곡된 데이터 풀에서만 정보를 얻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이를 이겨내기 위한 여러 방법들 중에서 '의도적인 실수'를 하라는 말이 가장 먼저 기억에 남는다. 저자는 이를 생각 뒤집기의 극치라고 말한다. 이 의도적인 실수는 기존의 가정이 옳았거나 틀렸다는 피드백을 얻는 행동이다. 프로세스를 통제 후, 무언가를 배울 가능성 큰 실수를 만들어내는 고도의 작업이다. 의도적 실수가 실패했다는 것은 그동안의 가정이 옳았다는 뜻이 된다. 무엇보다 실수를 통해 가설을 검증해 내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실수를 하란 말인가?
Devil's Advocate라는 말이 있다. 직역하면 악마의 변호인인데, 의도적으로 반대의견을 청취함으로써,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사각지대와 잠재된 위험을 제거하여 본래 의견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을 말한다. 독립적인 반대의견을 들음으로써 자신의 자만심을 제어할 수 있는 지혜가 돋보인다. 이때에는 질문을 던지는 것도 중요하다.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확증을 타파하는 질문이어야 한다. 레이달리오의 책 "원칙"에는 매우 큰 두 개의 대원칙을 이야기하고 있다. 개방성의 원칙과 투명성의 원칙이 그것이다. 그 중 개방성의 원칙에서 '독립적인 반대의견을 제시할 것'을 매우 중요하게 이야기한 기억이 난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점을 발견할 수 있지만, 반대 의견에는 저항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질문을 현명하게 던져야만 한다. '옳은 접근법이 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묻는 것을 통해 '미묘한 방향 차이'를 일으켜서, 그 저항을 낮출 수 있다. 레이달리오가 말하는 '개방성'이란, 결국 자유로운 반대의견의 교환을 의미한다.
'플레이리스트법' 또한 인상깊었다. 이는 예시 답안을 모아 두어서 수시로 참고하는 것이다. 우선은 내부에서 답을 찾아볼 수 있다(줌 인). 과거의 성공 경험과 유사한 사례를 검토하여 가능성을 확인한다. 이후에는 외부관점에서 기저율과 다양한 근거를 수집하는 것이다.(줌 아웃) 내부관점의 장점은 미묘함과 질감, 디테일을 얻을 수 있다. 한편 외부관점을 통하여 객관적인 숫자와 기저율을 얻을 수 있다. 내부 관점의 질감 있고 다채로운 정보와 외부관점의 숫자정보는 모두 중요하다. 현장방문, 경쟁사 제품 써보기 등은 디테일한 정보를 얻는 좋은 수단이다. 플레이리스트는 '중요한 질문', '참고할 원칙', '고려할 아이디어' 등을 얻는 데에 유용하다.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평소에 나의 경험을 기록하고, 밝은 점과 모범사례를 기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작가 님의 책 "럭키"에 나왔던 '복기'를 통한 성공사례 연구가 이에 해당하는 것 같다. 이는 큰 의미에서 유비 추론을 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당면한 문제의 중요한 특징을 뽑아낼 수 있을 것이 요구된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뒤집는 훈련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내가 가진 직관과 가정을 흔들면서 생각을 뒤집는 훈련을 할 수 있다. 인터넷에서 우리는 수많은 별점을 의사결정에 참고한다. 하지만 직장, 결혼 등의 큰 일에서는 별점을 참고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경우에도 우리는 평균을 신뢰해야 한다. 외부관점은 기저율과 객관적 유사성, 숫자를 강조하지만 내부관점에서는 자신의 상황, 직감, 낙담, 자신감 등의 차이점을 강조한다. 그럼 이 기저율은 어디서 얻어야 할까? 저자는 전문가에게 질문하는 것이 바로 이 기저율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반대로, 절대 예측을 맡기지는 말라고 경고한다. 예측에 있어서는 전문가들도 부정확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데이터에서 나타나고 있는 기저율만을(과거 사례, 통계적 경향 등) 검증해야 한다.
사람은 예측에 있어 좀 더 겸손해져야 한다. 마지막 방법은 바로 우칭이다. 큰 시험을 앞선 여러 번의 작은 시험이 바로 우칭이다. 실제 수능시험을 앞두고 수차례 행하는 모의고사가 바로 우칭의 좋은 예이다. 모의고사를 통하여 실제 시험에서 발생할 수 있는 나의 실수와 부족한 지점에 대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어설프게 수집한 연약한 정보에 큰 모험을 할 수는 없다. 만약 취업을 준비 중이라면, 무료봉사로라도 미리 일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진로를 결정하려면, 해당 분야를 먼저 경험해 보아야 한다. 미국의 대학원은 우칭을 의무화하고 있다. 대충 이 쪽 길이 '맞겠지', '안 되면 그만'이라는 무사안일한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 철저히 팩트를 수집하면서 내가 가진 대안들의 가설을 검증하는 태도, 그것이 바로 2 단계의 핵심이다.
충동(단기 감정)을 무찌르기:결정과 거리 두기(Attain distance)
의사결정을 방해하는 세 번째 괴물은 바로 단기 감정이다. 주식투자를 하면서 감정 조절을 하지 못해서 뇌동매매를 한 적이 많기에, 이 부분을 읽으며 특히 흥미로웠다. 단기 감정은 생각을 멈추게 한다.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은 투쟁-회피 반응을 유도하여 우리는 의식하지도 못한 채 쫓기듯 결정하게 된다. 저자는 이렇게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나와 결정과의 거리를 두어야만 한다고 말한다. 10-10-10원칙으로 명명한 거리두기 전략은 단순하면서도 그 효과가 강력하다. 10분 뒤, 10개월 뒤, 그리고 10년 뒤에도 나는 같은 결정을 할 것인가?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정확성과 객관성을 얻을 수 있다.
핵심 우선순위 결정을 미리 해 두는 것도 도움이 된다. 오래도록 변치 않는 감정적 가치, 목표, 열망, 신념 등을 가지고 있다면, 순간적인 감정의 변동성에 속지 않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스티븐 코비의 7가지 습관의 두 번째 원칙과 연결할 수 있을 것 같다. "끝을 생각하고 시작하라"는 원칙인데, 비전과 가치관, 인생의 사명을 먼저 생각함으로써 길을 잃지 않고 궁극적인 목적중심적인 행동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이는 WRAP원칙의 세 번째, 거리두기 원칙과 결국 같은 말이다. 스티븐 코비는 인간이 가진 최강의 무기가 '상상력'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상상력을 통해 얼마든지 결정과 거리를 둘 수 있다.
우선순위 간 충돌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에는 더 중요한 감정에 귀 기울어를 기울여야 한다. 더 중요한 감정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그것은 논리의 영역이 아니다. 열정, 가치, 신념 등의 감정의 영역이다. 단,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감정이다. 막연한 가치(신뢰, 정직 등)의 뒤에 숨어서는 안 된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만족과 보람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또한 그만 둘 일 목록을 작성하라고 조언한다. 이는 시간낭비되는 일을 제거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위함이다. 이와 관련 "생산적 멈춤"이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나는 이 순간,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이다. 이를 통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조건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만약 고객이 흥분한 상태에서 컴플레인을 걸어온다면? '분노', '불쾌감' 같은 단기 감정은 그 고객의 생각을 멈추게 하고, 마음이 혹하도록 부추기고 있는 상태일 확률이 높다. 이를 위하여 고객을 우선 "생산적 멈춤" 단계로 유도한다면 효과적일 것이다.
단순 노출 효과라는 것이 있다. 많이 접하는 자극에 대해 우리 뇌는 더 긍정적으로 느끼며, 친숙하다는 이유로 진짜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나는 익숙하지 않은 상황을 맞이했을 때, 제 실력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불안과 공포, 거절의 두려움, 떨림과 흥분, 우왕좌왕하는 느낌과 감정이 올 때면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책은 '실전에 약하다'는 나의 치명적 약점을 이겨낼 방법을 전해주는 참 스승이었다.
저자는 "지금 당장의 느낌과 감정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라"라고 말해준다. 이를 위한 감정적 거리두기 전략들이 바로 Attain distance 단계인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미리 정해두고, 지금이 아닌 나중에 느낄 내 느낌을 생생하게 생각해 보는 단계였다. 이 방법은 어쩌면 손실회피성향, 소유효과, 현상유지 편향, 익숙함 효과 등, 대부분의 인지 편향을 극복하는 방법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과 과신(불확실성)을 무찌르는 마지막 원칙, 실패를 준비하라
결과가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실패에 대한 준비 없이 무엇인가에 뛰어든 적이 있지 않은가? 특히 ISFP인 나는, 모든 물건을 구매하면 설명서 보지 않고 일단 내가 스스로 하는 편을 선호한다. 그러다 막히면, 그제야 설명서를 보고 다시 조립한다. 내 와이프는 이런 내 모습을 보면서 왜 설명서를 보고 시작하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는 ISTJ이기 때문이다. 나는 인생의 좌우명인 '모사재인 성사재천'을 소개하는 포스팅에서 '성사재천'에 해당하는 부분이 바로 WRAP의 네 번째 원칙과 같은 의미라고 글을 쓴 적이 있다. 내가 최선을 다해 시도하지만, '내 손을 벗어난' 부분에 대해서는 겸허히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갖는 것이 바로 성사재천이다. "어떤 결과든 받아들인다"는 태도, 그것은 진짜 내가 해 볼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지 않고서는 가질 수 없는 태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책에서의 성사재천은 더욱 구체적이고, 전략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어서 매우 흥미로웠다. 내 가슴속에 품은 좌우명을 구체적 전략으로 제시해 주는 책이라니, 나는 이 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전 부검-사전 퍼레이드는 3단계의 10-10-10 원칙과 유사한 느낌이 들었다. 내 결정의 결과를 미리 '예측'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최악의 상황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3단계에서는 내 행동에 대한 나의 감정이 미래에 어떨지를 떠올리는 것이었다면, 4단계에서는 내 행동의 결과가 나빴을 경우에 예상되는 그 원인들을 떠올려 미리 준비하게끔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미래를 과거시점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미래의 특정시점을 과거로 상정 후,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다. 이는 풍부한 사고를 자극한다. 왜냐하면 현재와 미래 사이 공백을 메꾸도록 유도된 질문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위협이 될 만한 사항이 드러나면, 최대한 이를 막기 위해 계획을 조정함으로써 틀릴 때를 대비할 수 있다. 예를 들면 1년 뒤, 과거 시점으로 "나의 블로그는 티스토리의 갑작스러운 서비스 중지로 인해 모든 글들을 잃어버렸다."라는 사전 부검을 해 보자. 그러면 이를 통하여 틈틈이 백업을 해 두어야 한다는 예방책을 얻을 수가 있다.
지지대를 설정하고, 유리한 판을 짜라. 만약 미래를 한 점으로 맞추려 한다면, 그것을 맞출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하지만 대락 6~7개월쯤 뒤라는 식으로 범위로 예측한다면, 그 확률은 높아진다. 이와 함께 6개월이 지나도 상황이 같다면, 그때에는 포기한다는 식으로, 인계 철선을 만들어 둠으로써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미래를 점이 아닌 범위로 예측한다는 것, 그리고 정확함을 추구하기보다는 적절함을 얻도록 준비한다면, 비록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부적절함은 피할 수 있다. 최악을 대비하는 PMEA기법도 소개한다. Failure Mode and Effect Analysis의 약자인데, 실패 양상과 영향을 분석하는 것이다. 이 기법에는 세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를 놓칠 가능성은? 잠재위험의 발생 확률은? 그리고 그 결과는 얼마나 심각한가? 와 관련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미래 위험에 대비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매일매일의 변화는 미묘하며, 서서히 일어나기에 우리가 알아채기가 매우 어렵다. 이를 위하여 조기경보 시스템을 만들어 두어야 한다. 결정해야 하는 시점의 경고등을 설치해 두는 것이다. 주식 트레이딩을 하는 데 있어서 손절선을 잡고 매수하는 것도 이러한 조기경보시스템과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하인리히의 법칙을 기억하는가? 1번의 초대형 참사 이전에는 29번의 참사가, 그리고 300번의 작은 사고들이 존재한다는 법칙이다. 위험 신호의 패턴을 인식하는 능력일 키워둠으로써, 1번의 초대형 참사와 29번의 사고 이전에 위험을 조기에 예방하는 신속 대응 방법을 미리 만들어 둘 수 있다.
언제까지만 지켜본다는 식의 데드라인을 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칸막이와 넛지(그 넛지가 맞다)를 사용하여 한번 더 생각해 보는 장치이자 경계를 설정하는 효과를 내는 것이다. 한편 비아그라나 나일론의 발명처럼, 불쾌한 부작용을 기회로 인식하고 새로운 움직임을 인식해 내는 사례들이 존재한다. 위기신호가 오히려 기회신호가 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마치며:선택은 내 몫이어야 한다.
WRAP라는 한 단어가 책 한 권을 함축하고 있다는 게 정말 매력적이다. 20대 때 행정법을 공부할 때 외웠던 '적-필-상'원칙이 떠올랐다.(적정성의 원칙, 필요성의 원칙, 상당성의 원칙)으로, 과잉금지원칙의 세부 원칙을 두문자를 따서 외웠었다. 역시 무언가를 외우는 데에 있어서는 두문자가 최고다. 책 전체 내용을 다시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내가 가진 선택지와 정보를 확보하자. 그리고 내가 내린 가설을 검증하고(생각뒤집기, 간접증명, 줌인, 줌아웃), 결정에서 거리를 확보하며, (우선순위와 10-10-10 조언자를 통해), 실패를 준비하자. (범위로 예측하기, 사전부검과 퍼레이드, 잠재손실에 한계 지우기, 예측을 기록하기)그리고 어느 시점이 되면 결정을 다시 평가하자(데드라인과 칸막이)
어쩌면 인간은 정말 나약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믿지만 각종 인지 편향에 휘둘리는 존재다. 하지만 괴력을 가진 어리석은 생각들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찬찬히 고민할 때 극복할 수 있다. 지난 글에서 내 사주에 있다는 공망살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공망살의 운명을 극복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어쩌면 나는 '공망살이 있으니까'라며 어차피 안 된다는 생각으로 이제껏 적당한 노력으로 살아왔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 책을 읽고서 '똑같은 노력을 반복'하는 것은 '노력을 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게 아닌가 하는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책의 저자들은 의사결정 과정을 분해했고, 각 과정에서의 장애물을 분석했고, 그 장애물을 뛰어넘기 위한 전략들을 만들어 책으로 전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왜 이 정도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저 괴로워하고 체념하기에 바빴던 것일까? 어쩌면 나는 그저 일희일비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들이 말한 '자동 스포트라이트' 조종 모드에 그저 내 의사결정을 맡겨온 게으름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 매우 큰 수확이었다.
월가아재라는 사람이 있다. 유명 유튜버인데, 그분의 책 "2라운드 투자수업"에 이런 말이 나온다. "후회를 한다는 것은 당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전제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어서 묻는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모르는 상태로 과거로 돌아간다면, 과연 똑같은 행동을 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나는 이 대목에서 오랜 시간 책을 더 읽지 못하고 생각에 빠졌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월가아재의 질문에 대한 답을 이 책이 제공해 주었다. 올바른 프로세스를 확립해 둔다면, 똑같은 상황에 닥쳐도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개인의 결정은 틀릴 때가 많겠지만, 올바른 프로세스는 든든한 아군이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나는 어제까지 보다 조금 더 현명하고, 더 대담해질 수 있다는 믿음을 얻게 되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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