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며: 투자를 잘하고 싶었다.
마음이 급했다. 투자 손실을 회복하고자 하는 마음에 실전 투자 비법, 기법을 찾아 헤매고 다녔다. '깨달음'을 갈구하며 방황하던 시기에 이 책을 접했다. 당시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지금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실전 기술'과 '매매 기법'이었다. 당연하게도, 이 책은 그런 내용의 책이 아니었다. 원하는 답은 주지 않고 "자네는 '소신파'인가, '뇌동파'인가?"라며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투자의 비법 따위는 없다며, 그런 게 있으면 아무도 일하지 않을 것이라며 일침을 가했다.
이 책은 유럽의 전설적인 투자자가 자신의 80여년의 투자 경험과 철학을 담은 책이다. 코스톨라니는 총 13권의 저서가 있으며, 대부분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고, 투자자라면 꼭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들 한다. 우리나라에는 앙드레 코스톨라니 총서 시리즈로 3권짜리가 있고, 또 몇주년 기념 양장본이 있다. 나는 모두 읽었다. 내용이 많이 중복되기도 했다. 그래도 읽을 때마다 새롭게 배우는 것이 있었다.
솔직히 내가 이 책을 제대로 리뷰할 수 있을까 싶다. 나는 아직 이 책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지 못했고, 책에서 배운 것을 온전히 실천하지도 못하고 있다. 그래서 나중으로 미루고 미루고 있었다. 사람들이 검색 결과에서 이포스팅을 찾을 수나 있을까? 검색을 해 보면 너무나 많은 좋은 리뷰들이 존재한다. 코스톨라니의 달걀, 추세, 심사숙고, 뻬따 곰블리 등, 핵심 내용들은 다른 사람들이 모두 다루었다.
때문에 최대한 기존의 리뷰들과 중복을 피하고자 애썼다. 이 책을 읽을 당시의 나의 상황과 경험을 표현하고자 했다. 같은 책일지라도 모두가 다르게 느끼고, 다르게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책의 매력이 아닐까?
경험이 최고의 무기이다. 비법은 없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에 '타짜'가 있다. 도박판의 '호구'였던 주인공 고니는 예술의 경지에 오른 타짜 평경장이라는 스승을 만나, 마침내 '타짜'의 기술을 손에 넣는다. 하지만 영화 막바지에 결국 '손기술'이 통하지 않는 상대, '아귀'를 만난다. 그리고 그런 아귀를 상대해 승리해 내는 것은 결국 치밀한 자신만의 시나리오와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다"라는 평경장의 마지막 원칙 덕분이었다.
갑자기 왜 도박 영화 얘기냐고?
영화 초반의 고니의 모습이 곧 나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큰 사고를 쳐 놓고, 수습은 해야겠는데, 미칠 것 같았다. 그러던 중 평소 무료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던 유튜브 채널에서 '평생 회원'이 되면 기법을 알려주고, 상승할 종목을 찾아주는 검색기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가격이 대학 시절 몇 년치 등록금보다 비쌌다. 고민을 하던 중에, 실제로 해당 vip 회원으로 가입한 회사 선배가 "그거 해도 소용없다"라며 날 말렸고, 대신에 이 책을 추천해 주었다.
코스톨라니는 투자자 유형을 '소신파' 투자자와, '뇌동파' 투자자를 나누어 비교하며 설명해 준다. '돈 따는 기술'을 배우고자 했던 나의 모습은 변명의 여지 없이 '뇌동파'의 전형이었다. 부끄럽지만 사실이다. 투자자의 마음으로 주식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도박으로 돈 잃은 사람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단호히 말한다. 모두에게 통용되는 비법은 없으며, 그런 것을 가르쳐 준다는 사람들은 '사기꾼'이니 조심하라고 말이다. 또한, "손실을 만회하려고 애쓰지 말라"고 말한다. 손실은 손실이다. 다른 돈으로 다시 수익을 거둘 수는 있을지언정, 그 돈이 잃어버린 돈을 되찾은 것은 아니다.
그는 "두 번 이상 파산 수준에 이르지 않은 사람은 진정한 투자자라고 할 수 없다"라고 말하며, 자신도 큰 손실을 입고 나면 다시 돈을 '벌어야' 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실패의 경험을 통해서만이 성공적인 투자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증권시장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 돈을 얻는 곳이고, 돈들 잃으면 대신에 경험을 얻는 곳이다.
그러니까 당신은 어떻게 성공했냐구요? 나는 책을 읽으면서도 마음이 급했다. 하지만 이 할아버지는 끝까지 그런 '기법'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평경장과는 다르게도 말이다) 대신 증권 시장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해준다. 그 이야기들에 모든 것이 녹아있음을 한 번 읽었을 때에는 깨닫지 못했다. 사실 아직도 다 깨닫지는 못했다.
투자자가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 것 : 돈, 생각, 인내, 행운
코스톨라니는 성공적인 투자자의 네 가지 덕목을 말한다. 그리고 맨 앞 자리에 '돈'을 두고 있다. 사실 투자가 돈으로 시작해서 돈으로 끝나는 것이기에, 가장 중요한 것이 맞다. 일단은 돈이 있어야 투자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나름대로 이것을 '예수금'을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현금도 종목이다'라는 격언과도 같은 의미일 것이다. 제시 리버모어도 비슷한 말을 한 바 있다. "현금이 없는 투기꾼은 상품이 없는 상인과도 같다". 또한 '삼원금천비록'에는 "돈은 병사이다."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투자자는 반드시 현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또한 절대로 빌린 돈으로 투자를 하지 말라고도 한다.
시장을 분석함에 있어서도 시장의 투자자들이 가진 '돈'을 생각하는 지혜를 배운 것은 이 책에서 얻은 가장 큰 가르침 중에 하나였다. 시장에 주식을 가진 사람이 더 많은 지, 돈을 가진 사람이 더 많은 지를 비교함으로써 시장이 하락할지, 상승할지를 판단하는 하나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단순하고 직관적이지만 핵심을 꿰뚫는 표현이었다.(이 책에는 이런 표현이 매우 많다. 예컨대 '추세=돈+심리', '산책하는 사람과 강아지의 비유' 등..)
생각과 관련해서는 '심사숙고'라는 표현을 썼다. 심사숙고란 곰곰히 생각하는 것이다. 그는 시장에 너무 가까이 있지 말고, 한 걸음 떨어져서 천천히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1차적인 생각뿐만 아니라 2차적 사고도 할 수 있어야 한다. 남들이 전해주는 정보를 순진하게 그대로 믿고 투자에 반영해서는 안된다. 스스로 행간의 뉴스 정보를 읽어야 한다. 그리고 다양한 사건들 간의 연관성을 파악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구분 능력이 생기면 중요한 뉴스와 중요하지 않은 뉴스를 구분할 수 있게 된다.
한편, 아무리 돈과 심사숙고와 인내심이 있어도 행운이 없으면 승리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행운은 분석이나 판단, 노력과 통제력을 넘어서는 외부 요인이다. 그렇다고 '결국 운 빨'이라며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운을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현명한 태도가 아니다. 치밀한 분석과 냉정한 판단으로 또한 리스크를 감수할 때, 행운을 잡을 기회가 온다.
나도 살아오면서 많은 노력과 실패를 거쳤고, 행운에 있어서는 꽤나 한이 맺힌 사람이다. 하지만 행운에 있어서 우리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은 놓아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행운을 기대하기보다는 주어지는 행운에 감사하고, 불운을 원망하기보다는 미리 준비하는 지혜를 갖추고자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되, 실패를 받아들일 준비는 항상 하자는 의미에서 나는 좌우명으로 "모사재인 성사재천" 말을 항상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2023.04.12 - [잡담] - 모사재인(謀事在人)성사재천(成事在天) : 좌절하지 말고, 주도적인 사람이 되자.)
투자는 과학이 아니다. 예술이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다, 과학이다"라는 광고 문구를 많이들 알고있다. 그런데 이보다 수십 년 전에 먼저 코스톨라니가 이 표현을 썼다. 사실 어디서 들어본 말들이 상당히 많이 코스톨라니가 한 말이었다. 그만큼 이 책은 많이 읽혔다는 뜻이리라.
과학과 예술은 모두 인간의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해야 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둘 다 어렵다. 보편적 원리를 통하여 세상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과학에 있어서는 감정을 배제해야 하고, 객관적 영역이다. 반면에 예술은 오히려 감정을 충실하게 표현해 낼 수 있어야 하며, 주관적이다. 때문에 창의성과 상상력이 요구된다.
이렇게만 보면 투자도 내 맘대로 감정에 충실하게 행하라는 말로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그냥 뇌동매매다. 예술이 성립하려면 반드시 타인의 '공감'이 필요하다. '대중'에게 인정받아야만 예술이 되는 것처럼, 대중의 심리를 반영한 투자를 해야 한다.
주식시장의 논리는 변덕스럽고 비논리적이다. 그 이유는 수요와 공급의 논리 외에 심리적 압박감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매도자가 압박감을 더 느끼고 있다면 주가는 떨어진다. 반대로 매수자가 마음이 조급하다면 주가는 상승한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주식시장의 수요 공급 논리이다.
특히 군중심리를 항상 생각해야 한다. 군중 심리는 비이성적이고 예측하기가 어렵다. 이러한 군중의 심리가 모두 한 쪽에 쏠렸을 때, 그래서 어떤 예측이 '기정 사실화'(유명한 페따 꼼블리이다)되었을 때, 귀신같이 시장은 반대쪽으로 움직이게 된다.
그 시기와 정도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시장의 심리에 역행해서 반대쪽으로 베팅할 수 있는 소신과 함께, 그 소신을 유지할 수 있는 인내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코스톨라니 본인은 본디 성격이 '오만하고 냉소적'인 태도를 가졌었고, 그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이와 함께 제시하는 것이 유명한 '코스톨라니의 달걀'이론이다. (검색하면 자세한 사진과 설명이 매우 많다. 꼭 찾아보시거나 책을 꼭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간략히 말하면 코스톨라니는 시장의 움직임을 여섯 부분으로 나눈다. 그중에서 시장의 움직임과 함께 투자하는 국면은 단 두 국면뿐이다. 나머지 영역에서는 모두 시장 사람들의 선택과 다르게 결정해야한다.
책 제목에서 뜨겁게 사랑하는 돈을 "차갑게 다루어라"라는 말은 결국 군중심리에 조종당하지 말고 냉정하게 판단하고 결정하라는 말이었던 것이다. 다만 기존의 지식과 법칙에 집착하지 말고, 유연성과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단 하나의 공식, 그리고 하나의 정답이 있는 과학이 아니다. 각자의 소신과 철학을 가지고 각자의 투자를 해야 한다. 투자는 예술이다.
마치며: 기술보다는 철학을 배우다
내가 읽은 주식 관련 책들을 보면, 초반에는 "주식시장의 승부사들", "실전투자의 비밀", "매매의 기술", "차트의 기술", "주식시세의 비밀" 같은 제목을 가진 책들을 우선적으로 먼저 읽었다. (이 책들도 모두 리뷰를 해야 하는데, 책에 나오는 캔들 차트를 어떻게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해서 리뷰가 늦어지고 있다)
지금 당장 써먹을 수 있는 내용과 기술을 찾아서 헤맸던 것이다. 투자 관련 유튜버들이 자주 하는 표현들 중에 '기법 찾아 삼만리'라는 말이 있다. 그들은 투자기법을 찾아 헤매며 방황하지 말고, 자신만의 경험과 원칙을 만들어가라고들 말한다. 나에게 정말 필요한 말이었다.
그러던 중에 이 책을 만났다. 코스톨라니의 말을 듣다 보면 평경장이 생각난다. 영화 타짜에서 평경장은 도박 기술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킨 사람이다. 평 경장이 고니에게 한 말들을 모두 되새겨 보면, 그는 비록 도박판의 타짜이지만 명확한 선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고니에게는 빚만 갚으면 도박을 반드시 관두라고 했다. 딴 돈의 절반만 갖고 나머지는 돌려주는 원칙으로 자신의 욕심을 억제하고 상생을 추구했다. 주인공에게 도박하는 사람들의 말로가 좋지 않음을 가르치려 애쓰기도 했다.
지난번 "복잡계 세상에서의 투자" 책을 리뷰하면서도, 나는 투자에 있어 구체적인 전략이나 방법을 설명해 주지 않은 것에 대하여 아쉬움을 표했었다. 지금 이 글을 쓰다 보니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그러한 방법과 기법은 각자의 경험으로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임을 코스톨라니가 일깨워 주었다.
철학이란 녀석이 항상 그런 것 같다. 당연한 말 아니면 아는 말이고, 그것도 아니라면 헛소리(어려운 말)이다. 잘 알아 들었고 공감했다고 해도, 막상 실제로 써먹을 데는 없다. 그래서 철학을 배고픈 학문으로 부르나?
하지만 명확한 철학이 없다면, 일관성을 갖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게 된다. 생각의 질서를 유지하지 못하게 된다. 불안함과 혼란함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당시에 나는 '실전 투자' 기술이 아님에 실망하고 다른 책을 찾아서 읽고는 했다. 하지만 이 책은 스스로의 '투자 철학'을 세우기 위하여 반드시 직접 읽어 보아야 하는 책이고, 어떤 투자자가 될지를 생각해 보게 해 주는 책이었다. 읽고 바로 다시 읽어도 새롭게 읽히는 책이면서, 또 술술 잘 읽히는 책이다.
당장 책 한 권 읽었다고 '소신파 투자자'가 되는 것은 어려웠다. 나는 아직 멀었고, 갈 길이 멀다. 돈도, 인내도, 생각하는 능력도 부족하다. 무엇보다, 경험이 부족함을 느낀다. 하지만 타짜는 아닐지언정 호구는 되지 말자고, 소신파 투자자는 못 되어도 뇌동파 투자자는 되지 말자고 다짐해 본다.
그런데,
나는 왜 주식과 투자를 공부하는 걸까? 나는 타짜가 되고 싶은 걸까? 나는 돈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잃은 돈에 그냥 집착하는 사람인가?
생각을 다시 정리해 보아야 겠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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