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프레드릭 배크만
- 출판
- 다산책방
- 출판일
- 2023.03.09
1. 시작하며
ISFP인 나는 웬만한 사람들과는 거의 다 원만하게 지내는 편이다. 특유의 둔한 성격도 있고, 호불호 자체가 거의 없다. 그래서 누군가와 마찰을 빚는 일이 없으니, '수동적 인싸'가 되고는 했다. 그런데 이런 나조차도 상당히 같이 있기 어렵고 껄끄러운 사람들이 존재한다. 보통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사람들을 싫어한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나랑 친하다고 생각한다.(티를 절대 안내기 때문에)
이 책의 주인공 오베도, 그런 사람이다. 사실 초반에 욕하면서 책을 읽었다. 설마 책을 덮을 때엔 내가 주인공을 좋게 생각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하면서 말이다. 이 책의 작가는 구체적이고 차분하면서도, 따뜻한 서술로 마법을 부렸다. 작품 시작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한결같은 행동을 하는 주인공 오베. 그에 대한 깊은 이해의 과정이 이 책의 주제이다. 책을 읽기 시작할 떄와는 달리 이제는 이 책이 왜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었는지 납득이 간다. 영화로도 제작되었다고 하는데, 내가 모르는 걸 보니 영화는 잘 안된 것 같다. 사실 현실에서 이런 사람은 있을 수 있지만, 이런 사람과 엮여 이해하게 되기는 힘든 사례가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
2. 세상에는 참 이상한 사람들이 많다
간략히 정리하면 이 책은 자기만의 신념과 고집으로 가득차 타인에게 인색한 한 할아버지의 인생과 주변 이웃들의 이야기이다. 자신은 확고한 원칙을 가졌다고 생각하지만, 타인이 보기에는 매우 편협한 사람이다. "오베라는 남자"라는 제목처럼 이 책은 오베라는 남자의 시선과 생각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점점 독자는 오베라는 남자의 과거 행적을 알게 된다.
오베는 자기만의 고집으로 가득 차 있고, 차는 오로지 사브만을 고집하며, 주차요금은 절대로 안 내려고 하는 편협한 할아버지이다. 주변 사람들이 대부분 자신을 속이려고 한다고 믿는다. 타협 불가, 고집불통, 욕쟁이, 꼰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나쁜 별명을 더 붙여줄 수 있다. 내 와이프는 이 책을 조금 읽다가 덮어버렸다. 주인공을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기도 싫다나.
내 직장 동료 J가 없었으면, 이 책의 주인공 오베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더 걸렸을 것이다. 이 사람은 참 별나다. 자기만의 곤조로 살아가는 사람이랄까. 말 그대로 '제 멋'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대화를 해 보면 사회에 대한 편견과 고집에 사로잡혀있다. 묘한 자기만의 합리화된 엄격한 논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자기 생각에 절대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다. 직접 겪지 않은 일은 믿지 않으며, 자신의 생각이 굳어지면 설득이 불가능하다. 정치, 종교 등의 특정 분야에서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모든 분야에서 이런 태도를 보인다.
같이 수영장을 다니기로 약속을 한 이후로, 이 사람은 도시의 수영장을 모두 직접 답사했다. 6년 전에 산 자동차의 비닐은 아직도 떼지 않고있다. 중고차로 판매할 때 값을 높게 받기 위함이란다. 회사 식당에서는 탄수화물 섭취를 줄인다며 밥 대신 반찬을 듬뿍 푼다. 뒤에 사람이 못 먹을 정도의 양을 푼다.
사실 이정도는 그냥 취향의 문제로 넘어가 줄 수도 있다. 우리 사회에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는 사람들, 법으로 금지한 행동도 거리낌없이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어쩌면 그래서 위험한 세상이 아닐까?. 그나마 단일 민족 비중이 높고, 사회적 통념이 먹히는 우리나라가 이 정도면 다인종 국가 미국은 어느 정도일까? 그래서 총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3. 누군가의 진면목을 이해하게 되는 기적
모두가 욕하는 그런 사람들이 나와는 잘 어울린다. 그런데 주변에서는 어울리지 말라는 조언을 해주거나, 아삼륙이라며 한데 묶어 놀리기도 한다. 직장에서도 그러했다. '~랑 붙어 다니지 마라. 너 이미지까지 망친다'라는 말을 한다. 사실 얼마 전 포스팅했던, 고시생 시절 나에게 2번에 걸쳐 사기를 쳤던 그 형도 그랬다. 다른 사람들이 '질이 매우 나쁘니 엮이지 마라'는 조언을 해주었었다. 당시 나는 내가 직접 겪지 않은 딴 사람의 얘기는 믿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다가 결국그 사람의 진면목을(부정적인 쪽이긴 해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데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어릴 때 부터 나는 특이한 사람들이 잘 따라붙었나 보다.나의 가장 친한 친구 K는 학창 시절 모든 학생들에게 미움받는 친구였다. 친구로서 냉정히 이야기하면 괴롭힘 받을 이유는 충분했다. 소위 '관종'기미가 다분한 녀석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ㅄ'이라는 말 밖에 안 나오는 행동을 하고는 했다. 그 시절 이야기를 얘기하면, 그 녀석은 '내가 언제 그랬냐면서' 버럭 화를 낸다. 그런데 30여 년 간 녀석과 어울리다 보니 어느새 평생 친구가 되어버렸고,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마다 그 녀석은 내 곁을 지켜줬다.
나는 군 생활을 하면서도 기적을 경험했다. 무려 20여 년 동안 군 시절 전우들과 만난다. 당시 너무나 힘들었던 군 생활을 함께 의지하며 이겨낸 공통의 경험이 있고, 사고로 인하여 함께 '영창'을 다녀오기도 했다. 비록 전쟁을 겪지는 않았지만, 전쟁을 준비하는 집단에서 2년 동안 같이 울고, 웃으며 '별 꼴 다 본 사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기적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직접 경험했다. 모두가 욕하고 피하는 사람을 나 홀로 제대로 이해해 주어서, 둘도 없는 지기가 된다는 이야기. 중년이 된 지금은 불가능할 수도 있는, 순진한 이야기. 실제의 내 인생의 몇몇 큰 이야기 중에 하나이다.
우리는 절대로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수 없다. 가족조차도, 부모조차도 완전히 알 수는 없다. 절대로라는 표현도 쓸 수 있다. 그런데 또, 기적처럼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 온다.
4. 삶에는 그런 아름다운 순간들이 찾아온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소설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설이라고 평하고 싶다. 심지어 주인공 오베는 할아버지다. 이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고 서로 소통하는 관계를 맺는 것은 더더욱 힘들 것이다. 소설 속에서조차 가능하기는 쉽지 않다. 온전히 작가의 능력에 달려있는 문제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의 최대 묘미는 그러한 기적에 가까운 순간을 독자에게 선사해 주는 점에 있다. 그 순간들을 만들어 내는 방법이 참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명대사들이 많았다. 저자는 3인칭 관찰자 시점과 전지적 작가 시점을 섞어가면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리고 오베 입장에서의 해석과 생각을 화자의 목소리로 서술한다. 오베에 관한 주변 사람들의 회고적인 서술도 함께 덧붙인다.
현재 시점에서 사건들의 전개를 보여주는 한편, 장이 바뀔 때마다 오베의 과거 경험과 생각을 들려주는 이중 서술 구조를 사용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독자 입장에서 오베를 이해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 놓았다. 이러한 장치에 민감한 사람은 약간 억지스러운 느낌이 들어 반감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소설이기에 가능한, 작가에게 허용되는 수준이다.
(참고로 얼마 전 포스팅한 장강명의 재수사 또한 이와 같은 이중 서술 구조를 사용했다. 다만 장강명은 그 서술 구조 장치를 통해 스릴러의 긴장감을 높이고 독자를 속이는 도구로 사용했다)
"남자는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야 할지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흑백으로 가득 찬 세상을 살아가는 남자, 그녀는 그에게 유일한 색을 가진 존재였다."
"너는 완전히 바보는 아니니까"(오베가 했던 최고의 칭찬)
사실 책장을 덮을 때 즈음, 이 오베라는 주인공을 이해한다는 것이 현실에서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의 지나온 모든 과거, 그리고 그 사람의 사고방식과 신념 등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구나 그 사람이 나와 전혀 상관 없는 사람이라면, 그건 초능력이거나 기적이 아닐까.
하지만 인생이란 기묘한 것이다.
지하철에서 난동 부리는 사람을 경찰이 제압하는 과정에서, 한 젊은 청년이 말없이 안아주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이 사람은 어떻게 알았을까.
https://www.youtube.com/watch?v=h3D8inL5tPU
5. 마치며 : 함께 울었던 처음 본 할아버지를 떠올리다
'이상한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이 잘못인 걸까? 그건 분명히 아니다. 오베는 '자동차는 거주자 지역에 들어갈 수 없다'라는 규칙을 종교처럼 지키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신념만큼이나 타인의 신념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일방적인 태도로 타인을 대하는 안하무인적 태도는 자신들이 뜯어고쳐야 한다. 오베는 끝가지 자신의 신념과 원칙을 고치지 않는다. 다만 새로운 삶의 의미를 주변사람들을 통해 찾아갈 뿐이다.
작중 파르바네의 꼬마 아이가 그림을 그리면서 오베만 컬러로 그리는 장면이 나온다. 편견없는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전형적인 심술쟁이 늙은이인 오베가 아니라, 특이한 재미있는 할아버지로 여긴다.어쩌면 우리는 나와 관계있거나 가까운 사람 말고는 모두 흑백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제임스 보그의 《설득의 디테일》 리뷰에서 나는 영업사원 시절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 할아버지는 나를 처음 보셨을 텐데도, 내 옆에서 울지 말라고 달래 주시려다가, 함께 울어 주셨다. 서로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냥 같이 울었다.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다. 그렇기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 한편 모든 사람이 결국은 이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라는 점에서는 우리는 공통점을 갖는다. 그래서 우리는 특별한 동시에 평범하다. 그 와중에서도 유난히 특별한 사람들이 있다. 자기만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이를 먹으니 그런 사람들은 아예 상대하지 않는 게 답이라는 쪽으로 점점 생각이 굳어져 가고 있었다. 이들을 굳이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똑같이 대해주어서 스스로를 느끼게 해 주는 것이 정답인 것만 같았다. 이 책은 그런 나를 다시 일깨워 주는 책이었다.
우리는 나와 관계없는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이 기적이 되거나, 이슈가 되어버린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소설에서나, 뉴스 영상에서나 가능한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좀 더 엮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좀 더 피곤해지더라도 말이다.
이곳 블로그도 그렇다. 모두가 각자의 블로그를 꾸미고, 글을 올리고, 사진을 올린다.단편적으로나마 우리는 서로 엮여있다. 아직 서로를 이해하지는 못한 채 말이다.
그래도 좋다.
흑백으로만 인식하던 서로를 어느 순간 이해하고 싶어지고, 또 이해하게 되는 기적. 서로에게 이런 기적을 경험할 수 있는 그런 상상을 해 보며 ,이만 글을 마친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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