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며
이 책을 읽을까 말까 많이 망설였다. 일단 재미가 없어 보였다. 그리고 뜬금없었다. 중국 철학은 많이 배워 봤다. 그리고 서양의 철학(헤겔, 칸트 , 롤스 등)도 많이 배웠다. 이 책은 일제시기를 전후하여 유영모라는 한국 철학자의 삶과 사상을 다룬 책이다. 나는 일단 다석 유영모라는 분이 누구신지 전혀 몰랐다. 이 책을 분류하자면 한국기독교철학서 정도가 된다. 관심이 없는 분야이지만, 그래도 열심히 이 책을 읽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독서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싶다는 것. 하지만 읽으면서 후회하기도 했다. 이 책은 포스팅하기에도 어려운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박재순은 함석헌이라는 한국 철학자의 이론을 배우고 연구하신 분이다. 그리고 함석헌은 다석 유영모의 제자이다. 즉, 자신의 스승의 스승에 관한 책을 쓴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다석 유영모의 삶과 그의 사상에 대해 자신의 해석과 분석을 덧붙여서 밝혀내고 있다.
다석 유영모는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가고 싶어 했고, 기독교 신앙을 한국화 하는데 기여했다. 맹목적으로 성경의 말을 그대로 믿고, 특정 목사를 신격화하면서 추종하는 것이 아니었다. 온 정신을 다해서 성경의 말씀을 이해하고, 또 한국인으로서 자신의 사고 체체에 맞게 적용하며, 평생을 그 길에 맞게 행동하려고 애쓴 사람이다. 존경할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다석은 기독교도인가?
나는 기독교도라고 보고 싶다. 그는 성경을 부정하지 않았으며,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만의 방법을 찾았다고 본다. 그는 기독교에 깊게 따르고자 하면서도 그는 기독교 교리만을 무비판적으로 따르지는 않았다. 그는 예수가 모든 인간을 대신에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대속'의 개념을 을 부정하고, 인간들 스스로 속죄하는 '자속'을 강조하였다. 그러면서도 대속과 자속을 구분하지 않았다. 그것은 개인=전체로 보는 관점에서 가능해지는데, 즉, 예수가 대신 죄를 속죄한다는 대속의 의미는 강하게 비판했지만, 예수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고 결국 인간 전체의 속죄를 상징하고 있다 점에서는 자속이자 대속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단순히 죄의 속죄라는 소극적 의미를, "진정한 진리를 찾고 영을 되찾는" 적극적인 행위로 해석하고 있다.
또한 다석은 유교, 불교, 도교를 비판하고 새로운 인자로서 예수를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수에 대한 전통적 교리 신앙의 방식으로 예수를 따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예수를 두 관점으로 면밀히 구분한다. 이를 통해 예수를 하느님과 일치시키고, 또한 예수와 모든 인간을 일치시킨다. 그의 예수는 다양하고 다차원적인 의미를 가지는데, 역사적으로는 나와 같은 한 인간에 지나지 않지만, 영으로 보면 하느님의 독생자로서 구원의 길을 연 구주이며 하느님의 말씀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는 이 두 가지 사실을 모두 인식하고 받아들인 것이다. 이는 한국의 전통 사상 체계인 삼재론에서 기인한다. "한글 속에 숨어있는 진리를 밝히는 것이 생각하는 사람들의 할 일이며, 한글 속에 숨겨진 하느님 뜻이 풀리는 순간 한국에 정신문화가 수립되고 그로 인해 전 세계가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 대해 나는 모두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한국의 정신과 철학을 생각하는 관점에서는 여러모로 분명 의미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명상을 통해 인간의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다
다석의 삶을 보면 그는 생사를 넘어 참된 삶을 추구했다. '오늘' '여기에서' 영원한 삶을 살기 위해서 그는 자신의 생명과 존재를 불사르는 '하루살이'의 삶을 살았다. (MZ 식으로 해석하면 갓생살기 정도가 될 것 같다)그리고 그러한 방법으로 생사를 초월하고 오늘, 여기에서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다석의 말을 빌자면 "빈탕 한 데서 노는")'가 온 찍기'를 했고, 날마다 하느님을 향해 솟아올라 앞으로 나가는 삶을 살기 위해서 늘 자신을 불태우고 새롭게 형성하는 '생각'에 집중하였다. 이러한 점은 데카르트의 인식론을 받아들이면서 변용한 것이기도 하다. 다석의 명제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가 아닌,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존재한다"이다. 다석에게는 생각이 삶과 유리된 관념이 아니라 삶과 정신을 불사르고 새롭게 형성하는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이성의 한계를 인식하고, '모름지기'라는 말의 새로운 의미 부여를 통해 '모름'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성으로 인식할 수 없는 곳은 이성이 아닌 '모름의 인식'에 바탕한 '행위'에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디트리히 본회퍼와 쑹산, 그리고 성경과의 비교가 이루어졌다.
또한 '밥'과 '숨'을 생명에 직결되는 행위로써 중시하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러한 의미 부여는 그의 특유한 언어철학적 방법을 통해서 이루어졌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서 그는 생각을 '말씀 사름', '말 숨 쉼'으로 이해했다. 말 숨을 쉬는 것은 신과의 소통을 하는 것이고 신과 소통을 하는 것은 영이 하는 일이다.
생각은 이성의 일일 뿐 아니라 영의 일이다. 생각이 존재론적이고 생명론적 행위다. 생각은 생명의 일이고 몸과 목숨에서 나오는 행위다. 다석은 생각이 사랑 안에서 불타는 것이라고 했는데, 사랑은 목숨과 영이 실린 것이고 목숨과 영에서 나오는 것이다. 목숨에 있어서 '숨'을 강조한다. 숨은 바로 영과 몸의 소통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삶과 살림을 구분하고, 살림에 필요한 밥, 옷, 집 등은 유한한 것이다. 하지만 삶에 필요한 것은 공기로서, '숨'은 무한히 가능한 것으로서 바로 생명에 직결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살림에 필요한 여러 물질적인 것들은 그저 삶을 위한 것일 뿐이다. 또한 도교의 정기신의 가르침을 받아들여서 호흡을 조절하여 단을 만든다고 주장했다. 동양과 한국의 인간학에 따르면 신은 인간에게 내재하는 신령한 정신이다. 신은 초월과 무한의 세계와 감응하고 교류하는 인간의 정신이면서 또한 인간을 초월하는 신령한 존재이기도 하다. 이는 서양에서 신을 인간의 밖에 존재하는 초월적인 타자로 구분하는 기독교의 하느님과는 구분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석에게 생명의 근본 바탕은 숨이고, 숨 속에서 하늘을 향한 길이 뚫린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를 두고 "숨과 영성에 대한 다석의 성찰은 서구의 이성 중심적이고 실체론적인 존재론에 대한 비판이며, 동양의 유기체적이고 통합적인 사유의 회복이고, 하느님과의 소통을 추구하는 기독교적 영성의 새로운 이해이다."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위로 솟아올라 참된 나를 찾고 나를 이어가는 것"이 바로 생각인 것이다.
우리말과 글을 살리려고 애쓰다
다석은 우리말과 글을 닦아 내고 살려 내려고 힘썼다. 저자는 이전의 한국사상가들과 비교하고 있는데, 동학, 증산교, 대종교 등의 경전들은 모두 한문 혹은 한문위주의 국한문 혼용체로 되어있는 반면 다석은 "민주 의식을 가지면서 우리말과 글을 철학적 언어로 다듬어 내고 우리말과 글로써 철학을 펼쳤던 첫 번째 사람이었다." 말년에 평생 말을 탐구했음을 밝히고, 말 마디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았다고 말했다. 다석에게는 우리말과 글에 대한 철학적 자각이 이루어졌음을 강조한다.
또한 그는 '하나'를 추구함으로써 하늘(하느님)과 사람의 정신, 사람의 몸이 모두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 하나임을 주장한다. 이는 서양에서 절대적 이성을 중시하고 자연에 대한 인간의 우위를 강조하는 서구철학과, 인간에 대한 신의 절대적 우위를 강조하는 기독교적 세계관, 그리고 동양에서 인간 속에 내재한 '신'의 개념을 종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그의 사상에서 유교, 불교, 도교, 기독교, 서구 철학을 "한데 뚫는" 사상이라고 볼 수 있으며, 동양과 서양의 정신문화를 융합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나'를 중시하는 철학을 세웠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다산 정약용, 동학사상과도 공통점이 있으나, 다산의 경우 하늘을 두려워하고 공경하라고는 했지만 다석은 하늘과 하나 되어 자유롭게 노닐 수 있는 철학이라는 점, 다산은 목민주의적 관점에 기초하고 있지만 다석은 모든 백성의 주체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석이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동학 역시 유불선을 회통하고 민중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사상을 형성했다는 점에서 동학과 유영모는 사상적 유사성이 크다고 볼 수 있으며, 동학의 종교 사상의 핵심은 다석에게서 그대로 발견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문-부적을 사용하는 등 서양의 근대적-과학적 사유, 철저한 이성적-합리적 사유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반면에 다석의 경우는 생각을 사상의 중심에 두고 '나'(씨알)를 깊이 파고들었다는 점에서 보다 현대적이라고 볼 수 있다.
다석의 사상이 갖는 의미 : 나는 왜 이 사람을 몰랐을까?
이 책과 다석의 사상에 대한 의미에 대한 언급을 하기 위해서는 앞에서 나누었던 이 책의 세 번째 부분에 나타난 저자의 표현을 빌려 먼저 서술해 보고자 한다. 저자는 유영모 사상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첫째, 기독교 신앙과 동양 종교의 창조적 만남을 이루고 하나로 꿰뚫음로써 지구화 시대에 인류의 평화를 위한 초석이 될 수 있다.
둘째, 앞으로 전개될 풀뿌리 민주시대와 서비스 중심의 사회를 위한 철학적 지침과 안내를 둔다는 점에서 민주와 섬김의 철학으로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셋째, 산업 기술과 정보 통신의 혁명으로 촉진된 감각적인 물질문명 속에서 인간의 정신이 고갈되어 가는 오늘날 현실 속에서 깊은 영성을 탐구하고 상생과 공존의 길을 여는데 기여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체제 하에서 돈이 가장 중요할 뿐 결국 어떠한 철학도 점점 무색해지고 있고, 서구에서는 명상과 불교에 열광하는 등 세계적으로 다시금 동양철학, 동양의 생각에서 답을 찾으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는 상황을 고려해 볼 때, 나는 위의 저자의 주장에 대부분 동의하는 바이다.
그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한국만의 철학 사상을 더욱 넓게 펼쳐졌으며, 이를 통해 기존의 사상들을 '한국적 재창조'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찾고 싶다. 그 방법으로서 한글의 제자원리와 그에 담긴 한국적 사상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한글의 제자원리가 '음양오행의 원리'를 따랐음은 훈민정음을 비롯한 다양한 자료에서 밝혀진 바 있으나, 다석은 그 음양오행의 원리조차 운명론적이고 비과학적인 것이라 비판하고, 그 대신 한국의 모음의 제자원리인 '천지인'의 삼재론을 강조하고 이를 발전시키고 있다. 이 부분에서 한국 사상의 독창성을 반영하고 있다. 그것은 한국의 전통 종교라고 말하지만 사실 외래 종교였던 유교, 불교, 도교 등에 녹아들어 가 있던 한국인들의 사상체계, 음과 양의 대조가 아닌 하늘과 땅, 그리고 그것을 연결하는 인간으로 보는 삼위일체의 세계관이다. 그리고 이러한 한국적 사고 체계가 동양과 서양 사상을 모두 아우르고 평화를 도모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통찰력은 우리나라와 민족의 역사인식과도 상통하는 바가 있다. '홍익인간'의 정신, 타국을 침입하지 않는 우리 민족사의 평화주의적 역사가 그렇다.
한국 철학과 한국 문화의 기본적인 성격과 강점을 깨닫게 해 주는 부분이다. 그런데 나는 왜 이러한 사상가와 이론을 평생 배우지도 못했고, 또 알지도 못했던 것일까? 주변에 물어봐도, 아무도 유영모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것은 우리나라 교육 체계가 서양 철학 위주의 수업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종교는 생각보다 많다. 일제강점기의 종교였던 '동학'은 '천도교'가 되어 아직도 활동하고 있다. 이들의 사상은 역사책에서 몇 페이지 배웠을 뿐이다. 기독교와 가톨릭이 전 세계적으로 지역별로 다양하게 가지가 나뉘고 있듯이, '대종교', '증산도', '대순진리회' , ' 등의 다양한 종교 또는 사상이 한국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졌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등도 기독교의 성경을 기초로 자신들의 교리를 펼친다. 이러한 사람들이 이단 혹은 사이비라는 인식도 존재하지만, 그 이론적 면을 보면 그들만의 사상과 체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나라는 종교와 사상의 자유가 헌법으로 보장된 국가이기에, 이들을 무시할 수는 없다.
어쩌면 교육과정에서는 큰 줄기, 즉 '주류'만을 배우고 있었기 때문에, 다석 유영모 선생을 알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 유영모의 제자인 함석헌에 대한 책도 많았던 것 같은데, 기회가 되면 읽어보아야 할 것 같다.
마치며 - 한 권으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책
이 책은 다석 유영모의 사상뿐 아니라 동양과 서양의 사상과 종교, 철학이 모두 집약되어 있는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이 그러한 통합성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사상을 포괄해 내는("뚫어 통하게 하는") 다석 사상의 특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러한 사실을 밝히고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한 저자 박재순 선생의 공이 들여져서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다석 사상을 설명하기 위해 마르크스, 프로이트, 니체, 데카르트, 소크라테스, 카를 바르트, 디트리히 본회퍼, 쑹산 스님, 고봉 스님, 불교의 선문답, 공자의 유교사상, 노장 사상, 석가모니의 발언, 그리고 성경에 대한 분석과 의미 부여 등, 폭넓은 분야에서 다석 사상의 특징을 설명할 논거를 찾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을 정독한다면 꼭 유영모의 사상에 감복하지 않더라도, 동서양을 아우르는 철학과 사상에 대해 '깊으면서도 연관되는'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기독교도는 아니지만, 성경을 많이 공부한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내가 가졌던 의문은 이것이었다. "성경 속에 등장하는 민족과 국가, 사람들의 역사가 과연 나와 선조의 역사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는 것은 너무 많은 노력과 숙고가 필요하기에, 나는 그 대답을 찾는 것을 포기했다. 그리고 어림짐작으로 한국의 기독교는 불교, 유교와 마찬가지로 한국에 찾아온 많은 외래 종교, 사상 중에 하나이며, 한국인의 삶에 맞게 바뀌어있다 정도로 결론을 지었다.
그런데 다석 유영모 선생은 기독교의 가르침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서 직접 자신의 삶으로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기독교의 많은 가르침을 한국적으로 재해석하고, 한국의 용어와 한국의 의미를 찾기 위해 애썼다. 평생을 걸쳐서 그렇게 노력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긴 시간이 흐른 후, 한국의 철학을 이야기할 때 칸트, 헤겔 등의 서양철학을 연구하는 오늘날의 주류 철학 박사들 보다는, 동학, 다석 등의 철학을 이야기하는 한국 철학 학자들이 주류가 될 날이 오기를 고대하며 이만 글을 마친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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