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보다는 분노가 더 낫다.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주인공 존 코너에게 터미네이터가 해 주는 조언이다. 주인공은 세계 멸망을 자신이 지켜야 하는 상황에서 뜻을 세우지 못한다.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황당함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주인공. 애꿎은 터미네이터에게 분노를 표현한다. 이런 주인공에게 터미네이터가 해 주는 짤막한 대사이다. '생존 기계'가 감정 없이 하는 말이지만 소위 '팩트'인 것은 맞다. 결국 주인공은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가기로 선택하게 된다.
나 또한 힘겨웠던 군 생활을 이겨냈던 것은 '분노'의 힘이 가장 컸다. 선임들이 무시무시한 악마처럼 느껴지며 두려웠다. 도망치지도, 도와줄 사람도 없는 갇힌 공간에서 나를 사로잡았던 절망과 공포를 이겨내고 작은 행동이나마 하게 했던 것은 나자신에 대한 강렬한 분노였다. 나는 병신이 아니라는, 그리고 내 삶을 끝내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출이었다.
분노는 에너지를 준다. 무기력감에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해 준다. 불닭볶음면 같은 책 "악인론"에서 손수현 님 또한 같은 말을 한 바 있다. 감정적 무기력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도록 해 주는 감정인 분노를 찾아 내 열망을 찾고, 그것을 실현할 방법을 찾는다.
수술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순순이가 계속 구토를 하고 숨을 헐떡이며 아프다는 급작스러운 소식에, 급히 서울로 올라갔다.
수의사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산책을 하면 뛰어다니며 멀쩡하던 강아지가 하루 만에 왜 갑자기 죽어가는것인지 빌어먹을 돌팔이 자식이 뭔가 실수한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제약회사 영업사원 시절 만났던 욕심 많던 의사들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왜 첫날 피검사에서는 아무 말 안 하더니, 같은 피검사를 다시 하지? 그리고 하루만에 간 수치가 악화되어 있는건 왜지? 멱살을 잡고 다시 건강하게 살려내라고 욕지거리를 내뱉고 싶었다. 건물을 불사르고 싶은 마음이 절절했다. 나는 믿지도 않던 신을 미친듯이 저주했다. 동생은 애꿎은 엄마에게 화를 계속 냈다. 녀석은 나보다 더 불안정해 보였다. 사실 그 녀석이 진짜 주인이다. 몇 날 며칠 동안 잠도 자지 않고 강아지 곁을 지켰다. 무거운 강아지를 안고 가다 멈추다 가다 멈추다 하며 병원을 다녀왔다고 한다. 나라도 감정을 추슬러야 했다.
수의사는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내가 갔을 때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투약한 약물이 뭐였는지 공개하고, 초음파 사진을 보여주며 냉정하게 말했다고 한다. 원인은 이제 밝혀진 것이 아니냐는 말에 원망의 마음이 느껴졌다. 원래 노령견은 멀쩡하다가 갑자기 이렇게 되는 경우가 있단다. 수술을 이야기했다. 미리 말하지만 배만 갈라 보는 수술이 될 것이라고 한다. 다만 악성 종양이 아니고 단순 자궁축농증일 경우에는 생존 확률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조차도 당장 수술을 할 수는 없다고 한다. 일단 회복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감정에 치우쳐서 일을 처리하면 안 된다지만, 그 녀석은 나의 소중한 가족이다. 무력감과 슬픔, 후회와 두려움이 나의 심장을 짓누르고 쥐어짜는 느낌이 들었다. 모험을 하는 심정으로 수술을 해야 할까? 말까?
최근에 포스팅했던 히스 형제의 "후회없음"의 내용을 떠올렸다. 나는 "할까 말까"의 편협한 사고틀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게다가 매우 감정적인 상태였다. 길게 생각해 보자. 최악의 상황을 준비하자. 스스로를 다독여 보았다. 하지만 당장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마음이 자꾸만 급해졌다. 수액을 맞으면서 헥헥대면서 버티는 모습이 안쓰럽다.
회사 단톡방에 질문을 했다. 숫자들은 없어졌지만 아무도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굳이 여기에 이런 질문을 하다니... 나는 괜히 올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고, 경험과 조언이 필요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보니 몇 사람이 장문의 답변을 해 주었다. 궤사성 뇌종양 판정을 받고 안락사 직전까지 갔다가 기운을 차리고 2년째 투병 중인 이야기, 수술 이후 깨어났지만 며칠 만에 떠나보낸 이야기, 15살인데 수술에 성공하여 20살까지 살다가 떠나보낸 이야기도 있었다. 그분들의 답변에서 아픔과 그리움이 느껴졌다. 대형견이 13년을 살았으면 행복하게 잘 산 것이라고 위로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이야기하시기도 했다.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설명해 주었고,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었다.
우선은 회복이 급선무였다. 기운을 조금이라도 차려야 뭐라도 할 수 있다.
나는 지금 해야 할 것을 해야 한다.
인터넷도 계속 뒤졌다. 반려견들이 주인에게 자신을 떠나보내줄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버티어 주고 있는 것이라는 이야기에 그만, 나는 울음이 터져버렸다. 나는 슬픔을 주체하지 못했다. 밀려오는 슬픔과 분노가 나의 정신을, 신체를 가눌 수 없게 한다. 나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리고 나는 이 글을 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때가 생각난다. 당시 나는 너무 어렸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뭘 해야 할 지도 몰랐다.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 보면 아버지에게 한 마디 사랑을, 존경을 더 표현하지 못했음이 가슴에 사무친다. 지금 힘들어하는 동생에게 힘이 되어주어야 한다. 이 생각에만 집중하자. 우선 마트에서 순순이를 옮길 수 있는 웨건을 구매했고, 수액을 두 통 더 샀다. 동물병원이 쉬는 날을 체크해 두었다.
정말 절망보다는 분노가 나은 것인가? 결국 올 것은 온다. 절망도 분노도 결국은 감정일 뿐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감정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몸이 내게 보내는 하나의 신호일 뿐이다. 무엇인가를 하도록 신호를 보내주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의 순간은 분명히 찾아 온다. 그 순간이 영영 오지 않을 것처럼 행동해 왔던 나 자신을 돌아본다. 그때 가서 또 울고 떼쓰며 신을 저주할 것인가?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슬픔에 터집니다"(님의침묵, 한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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