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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유명인의 블로그를 구경하고 왔다. (빌 게이츠의 책 리뷰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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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뉴스를 읽고 빌 게이츠의 블로그를 찾아보았다

눈을 뜨고 나서 어리둥절했다. 부재중 통화 기록, 친한 친구가 술 먹다가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나는 전화 온지도 모르고 코를 골았겠지만, 무의식 중에 압박을 받았는지 새벽 4시가 되어 잠이 깨어버렸다. 생각해 보면 우리 삶은 역설로 가득 차 있다. 잠에서 덜 깨어있는 시간을 가져야만 잠이 완전히 깨니 말이다. 그 시간에 멍하니 스마트폰을 보았다. 이런저런 뉴스를 생각 없이 터치했다. 수많은 기사 중에서 빌 게이츠의 책 리뷰 블로그가 있다는 정보를 담은 뉴스를 읽었던 것은 우연이었다. 맞다. 그 빌 게이츠 형님이다. 빌 게이츠는 무려 60평 규모의 서재를 가지고 있다. 소장 도서들의 가격만 해도 700억 원어치가 된다고 하니, 과연 세계 최고의 부자답다. 

나는 지금보다 더 책을 깊게 읽고 싶고, 더 많은 영감을 얻고 싶다. 또한 글쓰기 실력을 늘리고 싶지만 지금 상태에서 더 큰 노력을 더할 에너지가 부족하다고 느꼈었다. 이 참에 자극 좀 받아볼까 하는 마음에 검색을 해보았다. Gatesnotes.com이라는 사이트가 빌게이츠의 블로그였다. 나는 바로 들어가 보았다. 

gatesnotes.com 화면 캡쳐
gatesnotes.com 화면 캡쳐

사이트는 예상보다 심플했다. 우리 같은 티스토리 블로거들의 블로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카테고리는 세 개뿐이다. 책과 관련된 페이지, 동영상과 관련된 페이지, 그리고 공지사항(2023년을 맞아 쓴 것 같다)으로 구성되어 있다. 회원가입을 해야만 댓글을 쓸 수 있는 사이트였다. 아마 몇 년 전 같았으면 이 정도 구경만 하고, 내용을 읽는 것은 시도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는 영어로 된 사이트가 한글로 자동 번역이 되니 참 편하다. 그렇게 나는 그의 리뷰를 읽을 수 있었다.

2010년부터 이어진, 1000개가 넘는 포스팅에 놀라다

닉 매기울리라는 미국의 데이터 과학자이자 투자 관련 블로거가 출판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런데 제목이 《JUST KEEP BUYING》이다. 말 그대로 그냥 계속 사라고 말하는 책이었다. 그 책에 따르면 미국의 유튜버와 블로거 등 콘텐츠 업계에는 "그냥 계속 올려라"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고 한다. 이것저것 많은 고민 하지 말고, 꾸준히 계속해서 올리면 된다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계속할 수 있는 꾸준함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잘 안다. 중간에 찾아오는 온갖 사건 사고들(광고 제한, 데이터 센터 화재, 티스토리 자체 광고, 기타 개인적 사정 등등)에 흔들리지 않는 '꺾이지 않는 마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랜 기간 무엇인가를 꾸준히 해 오고 있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그런 점에서 빌 게이츠는 대단한 사람임이 분명하다. 물론 마이크로소프트를 통해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된 것만으로도 대단하긴 하다. 하지만 그건 내가 모르는 사업가의 영역이고 머리로는 이해를 해도 공감을 하지는 못했었다. 그런데 이 블로그를 방문해 구경하면서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는 가진 돈과 힘이 매우 크다. 그만큼 할 수 있는 것도 많고, 게이츠 재단을 통해 해야 할 일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도 꽤나 오랜 기간 많은 책을 읽고 많은 글을 올려왔다. 

어떤 포스팅에서는 15년 전에 친구에게 보냈던 이메일을 보여준다. 그 메일을 통하여 그때 당시 자신이 읽었던 책들을 소개해 준다. 당시 책 목록들을 보면 대부분이 기후와 지구에 관한 책들이다. 그때부터 기후변화 위기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매우 놀라운 것이 3~4 문장 만으로 한 권씩, 한 번에 10여 권의 책을 리뷰하였다. 책의 핵심 내용을 자신의 글로 요약해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깊은 이해를 이루었고, 언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책 리뷰 목록 캡쳐
책 리뷰 목록 캡쳐

책 리뷰의 스케일이 다르다. 한 번에 5권씩 리뷰를 하기도 하며, 심지어 책 리뷰 동영상도 그 수가 상당히 많다. 정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다.'여름에 좋은 책' 이라던가, '올해 읽고 싶었던 책' 이런 식의 주제로 책들을 소개해 준다. 단순히 책만 리뷰하는 것이 아니라, 주제 별로 책을 묶어서도 소개해주고 있는 점이 놀라웠다. 작은 큐레이팅 서점 같은 느낌이다.

빌 게이츠의 책 리뷰를 리뷰해 볼까?

훑어보다가 《GROWTH》라는 책의 리뷰를 가장 먼저 읽었다. smil이라는 작가가 쓴 책인데, 빌 게이츠가 가장 좋아하는 사상가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사람의 책 리뷰만 총 32개가 있다.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책을 출간한 것도 신기하고, 그걸 다 읽고 리뷰를 올린 것도 신기하다.(저자는 총 39권을 출판했다고 한다) 심지어 저자와 대화하는 동영상도 올라와 있다.

이 리뷰는 '오버뷰 이펙트'를 소개하며 글이 시작된다. 오버뷰 이펙트란,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본 우주비행사가 겪은 현상을 말한다고 한다. 커다란 시각으로 모든 것을 관조하는 개관적인 패러다임을 갖게 되는 효과이다. 작은 것에 얽매이지 않고, 장대한 시야를 가짐으로써 통찰을 갖게 된다.

글의 구성만 놓고 보면, 요즈음 블로그에서 유행하는 AI로 쓴 책 리뷰들과 비슷했다. 빌게이츠는 책의 각 장의 내용과 개념을 설명해 준다. 1장부터 끝까지 4~5줄 정도로 간략하게 설명하는데, 그 책에서 저자가 '보여주는' 것과 자신이 '얻은' 것을 중심으로 서술하며, 무엇이 왜 흥미로운지를 이야기해 준다.

글의 말미에는 자신은 저자에게 완전히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힌다. 저자는 기술의 발전을 과소평가하고 있음을 밝히며, 자신은 미래 기술의 발전을 더 낙관적으로 본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이 책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저자의 커다란 시각에 대해서는 감탄하면서 리뷰를 끝맺는다.

또 다른 책 《Tomorrow, tomorrow, tomorrow라는 소설의 리뷰를 보자. 이 소설은 게임회사를 차린 사업가의 이야기이다. 그는 자신이 게이머인가?라는 질문으로 글을 시작한다. 게임에 수백 시간을 쓰지는 않기 때문에 게이머라고 할 수는 없지만, 최근 몇몇 게임을 하고 있기 때문에 넓게 보면 게이머라고 말한다. 

빌 게이츠는 자신의 과거 마이크로소프트 창업 시절을 떠올리며 게임의 인물과 자신 및 자신의 친구들을 동일시하고, 비교하면서 글을 써 내려간다. 내가 이 글을 재미있게 읽었던 이유는 내가 쓰는 책 리뷰 방식과 비슷해서 정감이 갔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읽은 책의 이야기와 내 인생의 이야기가 함께 떨려오는 '울림'을 전하는 글을 쓰고 싶다. 그리고 그저 추상적인 말만으로 이루어진 글이 아닌, 나의 정신과 목소리를 담은 나의 글을 쓰고 싶다. 

빌 게이츠는 자신만의 경험(마이크로소프트 창업 경험)을 소설을 읽으면서 등장인물들과 스토리에 투사했다. 그리고 소설의 작가가 잡아낸 인간관계와 사업에 관한 통찰을 칭찬한다. 이는 실제로 동일한 자신의 경험이 있을 때에만 가능한 칭찬이다. 나 또한 이곳에 《설득의 디테일》 책 리뷰를 쓰면서 제약회사 영업사원 시절의 경험을 떠올렸었다. 빌 게이츠는 마지막에 Zevin(소설의 작가)의 말을 전하며 글을 끝맺는다. “다른 사람과 관계를 허용하는 것은 작은 위험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이 열려 있고, 노출되고, 상처를 받도록 허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신뢰와 사랑이 필요합니다.”

번역체라서 좀 그렇긴 한데, 그래도 내용은 충분히 전달된다. 빌게이츠는 책 리뷰 마지막에 저자가 하는 말을 직접 인용으로 쓰면서 마무리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나의 리뷰와는 대조적이다. 나는 항상 책을 읽고 나서 내가 느낀 점이나 생각을 정리해서 '마치며'라는 항목으로 마무리하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의 책 리뷰 마무리 방식은 저자가 하는 말을 독자에게 '소개하고 전해 주는' 역할에 충실한 리뷰가 되도록 해 준다. 한 수 배웠다. 내가 생각했을 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저자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해주는 것도 좋아 보인다. 

마치며 : 꾸준함, 방대함, 그리고 

동영상 목록 캡쳐한 화면
동영상 목록 캡쳐

단순한 디자인의 사이트였지만 역설적으로 무척이나 찬란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그것은 블로그에 담겨있는 내용이 풍부하고 다채로웠기 때문일 것이다. 빌 형님은 주 1회 정도의 포스팅을 꾸준히 하고 계신 것 같다. 마지막 포스팅이 7월 10일의 포스팅이다.

동영상 목록에서 워런 버핏과의 이야기를 주제로 모아 둔 부분도 흥미로웠다. 1991년에 처음 만난 이후, 자신이 존경하고 좋아하는 친구라고 말한다. 90살 먹은 할아버지를 '친구'라고 부르는 이들의 문화가 부럽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나이와 서열 중심의 상호관계가 남아있다. 사람을 동등하지 않고 위계와 서열을 정하는 태도를 갖는다. 아주 오랜 기간 뿌리 박혀 있는 것이라 누구를 탓할 수는 없다. 얼마 전 회사 선배와의 트러블만 해도 그렇다. 나는, 서로 존중하고 동등한 관계를 꿈꾼다.

우리나라는 드라마들을 봐도 재벌-검사-의사 같은 최상위 계층에 대한 선망이 드러나 있다. 그런데 재벌 중에서도 세계 최고 재벌에 속하는 빌 게이츠는 블로그를 통해 친구로 다가오고 있다. 자신의 재산을 사회로 돌려주기 위해 애쓰는 행동도 놀랍지만, 이렇게 블로그를 통해 자신이 읽은 책을 소개하면서, 자기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는 것도 내 마음에 반향을 일으켰다.

블로그를 부업으로 삼아 수익을 추구하는 것 때문에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으로 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나의 관심사를 공유하고, 독서를 공유하고, 성장을 공유하는 것도 블로그의 매력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모든 것을 터 놓을 수는 없지만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는 하나의 창구로서 블로그를 하는 것 같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가 아닌, 책 읽는 한 사람으로서 빌게이츠를 만나보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었다. 책 한 권 한 권을 부담 없고 간결한 문장으로 소개해주는 글쓰기도 배울 수 있었다. 꾸준함과 방대한 독서 스펙트럼을 배울 수 있었다. 이제는 어디 가서 책 많이 읽는단 말을 조심해야겠다. 겸손하자.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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