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으며 나의 첫 회사 생활이 자꾸만 떠올랐다.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경기도 일산의 아파트단지 놀이터 의자에 정장을 입고 앉아 눈 맞으면서 엉엉 울었었다. 사람들이 쳐다봐도 창피한지도 모르고 울었다. 놀이터를 몇 바퀴 걷기 운동을 하시며 날 지켜보시던 할아버지가 조금씩 내게 다가왔다. 내 옆에 앉으시면서 "젊은 친구가 왜 그래? 나도 안 우는데~" 그러시더니 갑자기 엉엉 우셨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한동안 울기만 했었다.
나의 첫 직장은 모 국내 제약회사 영업사원이었다.
술도 마시지 못하고, 그렇다고 말주변이 좋지도 못하며, 조금만 당황해도 식은땀이 나고 윗사람과 친해지는 데에는 주변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런 나에게 대한민국의 의사 선생님들을 상대로 영업한다는 것은, 내 평생의 도전이었다. 그런데 현실은, 의사는 커녕 간호사들 통과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내 평생의 밑바닥이 군 시절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나는 실패했다.
묶여있는 개와 함께 서 있는 사람에게 나는 질문한다. "당신의 개는 사람을 뭅니까?" "아니오"라는 대답에 나는 그 개에게 다가갔고, 곧바로 물리고 말았다. 이 이야기에서 나는 무엇을 잘못했을까?
첫 번째 디테일, 진심
이 책의 저자인 제임스 보그는 설득의 첫 단계는 상대방과 나와의 관계를 형성하고, 상대의 머릿속에 진행중인 가장 중요한 사건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의 말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위의 이야기에서 개를 만져보고 싶었던 나의 첫 질문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저자는 영업사원들은 고객의 필요에 집중하여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얻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강요를 설득과 착각하지 말 것"을 강조한다. (현업에서는 의외로 많은 수의 영업사원 및 사장님들이 착각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설득의 3요소로 로고스(논리), 에토스(호감과 신뢰), 파토스(감정, 공감)를 제시한 바 있다. 저자는 이에 대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준다. 내가 영업사원 시절 그나마 성공했던 경우들이 떠오른다. 할머니이거나 할아버지이신 약사, 의사 선생님들께서 첫 직장이라고 소개를 했을 때 한 개씩 사주셨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손주들 생각에 호감으로 팔아주신 것이 아니었을까.
"진심이 아닌 설득은 기만이자 사기이고, 조종이다" 설득의 디테일한 기술을 설명해주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조금 역설적이게 들린다. 하지만 저자는 설득에 대하여 단순히 내 생각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고무적인 소통'을 설득이라고 말하며, 그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파악하고, 타인의 견해를 직접 경험하는 '공감'능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는 스티븐 코비의 습관 중 '이해하고 이해시켜라'와도 같아 보인다.)
두 번째 디테일, 경청
"모든 의심을 해소하려 입을 열기보다는, 바보처럼 보여도 침묵이 낫다"라고 말하며, 저자는 경청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듣는 것'과 '소음에 노출되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떠오르는 다른 생각을 지우고, 화자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물 하고 음식만으로 일주일을 버틴 적이 있다"라고 말해보면, 그 사람이 건성으로 듣고 있는지에 대하여 파악할 수 있다는 부분을 보면, 디테일한 표현이 이 책을 읽는 묘미로 다가온다. 끼어들기와 추임새 넣기를 구분하고, 상대방의 말을 다시 말해주기, 확인해 주기, 그 말이 시사하는 의미 덧붙여 설명해 주기, 타인의 판단 근거와 사고체계를 이해하기 등 디테일한 기술(?) 내지 기법들을 알려주고 있다.
세 번째 디테일, 집중
흥미는 집중의 전제조건이다. 상대방이 내가 하는 말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집중하지 못한다. 집중하지 못하면, 소통할 수 없다. 따라서 성과도 얻을 수 없다. 따라서 상대방의 집중이 흐려지는 것을 관찰하고, 또한 집중을 유도해야 한다. 사람들은 '경청연기'의 귀재들이다. 절대 속으면 안 된다. 상대방의 '집중력 차트'를 머릿속으로 그려내고, 중요한 타점마다 주의를 집중시키도록 맥을 짚어주어야 한다. 상대방의 '집중력 차트'가 망가졌다면, 즉시 대화를 중단하는 것이 낫다.
이 책은 총 열 가지로 나누어서 디테일한 설득 전략을 소개해 준다. 실제 영업사원으로 일해본 경험이 없었다면, 절대 이해하지 못했을 내용들도 많아서 같은 경험이 없다면, 잘 읽히지 않을 수도 있다. 반대로 나는 더더욱 감탄하면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 글쓴이가 마술사 출신이긴 해도 영업사원 출신은 아닌 것 같은데, 어찌 이렇게 디테일한 부분을 써나갔는지 놀라울 뿐이다. 그가 사용하는 표현들은 절묘하면서도 상황을 잘 표현해 주어서,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 당시 나는 왜 이런 책들을 찾아 읽고 연구할 생각을 하지 않았었나 반성하게 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했던가, 그래도 이제라도 읽어보니 또 재미있는 것 같다. 이번 책은 잘 고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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