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책을 읽은 후, 디테일에 꽂혀버렸다. 나도 미묘한 감각을 가져보려고 시도해 보았다.
밥을 먹을 때도, 말을 할 때에도 사소함과 미묘함을 느껴보려고 애썼다..
디테일한 표현과 배려... 그냥 그래보고 싶었다.
그리고 난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좀 더 디테일한 감각을 자극할 책을 찾아봤다.
하루종일 책을 찾아 헤맸다. 아무도 못 보는 것을 보는 천재에 관한 책도 있었고, 카피라이터 출신이 쓴 책도 있었다. 그런데 정작 내가 고른 책은 뜬금없게도,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 갈증이었다.
내가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그동안 너무 자기 계발서나 주식 책 위주로 읽었기 때문에 새로운 분야의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특히나 디테일한 표현과 문장을 읽기에는 캐릭터와 사건, 시간적-공간적 배경을 만들어 내어야 하는 소설이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둘째로는 는 이 소설의 설정이 매우 독특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예수(님)를 주인공으로 한 1인칭 시점 소설이다. 처형을 하루 앞둔 전날 잠이 오지 않는 감옥에서 소설이 시작한다. 그리고 처형장으로 걸어가고, 처형당하는 순간까지. 단 하루가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의 전부이다.
이러한 독특한 설정을 어떻게 전개해 나갈지가 궁금했다.
우리가 가장 디테일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고통이다.
첫째 말씀 :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둘째 말씀 :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
셋째 말씀 :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요 19:26-27).
넷째 말씀 :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 막 15:34; 시 22:1).
다섯째 말씀 : “내가 목마르다”(요 19:28).
여섯째 말씀 : “다 이루었다”(요 19:30).
일곱째 말씀 :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
각종 성경에 따르면 처형을 당하는 순간 예수(님)는 일곱 가지 말을 했다고 한다.(가상칠언) 위의 글을 읽어보면, 죽음에 대한 여러 가지 감정이 보인다. 용서와 약속, 가족에 대한 생각, 원망, 육체적 고통, 희생의 실현 등이 그것이다.
작가는 왜 하필 "내가 목마르다"를 선택해서 소설의 주제로 선택했을까? 내가 생각하기에 용서와 원망, 약속과 비전 등의 것보다 '고통'이 가장 구체적으로 와닿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은 책을 읽어가는 내내 발견할 수 있었다.
"죽음으로 잃는 것은 시간이다"라고 말하며 고통을 죽음과 직접적으로 연결 짓고 있지 않다. 죽음을 두려워하지는 않지만, 삶의 상실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죽음의 순간을 자기도 모르게 넘기는 것이 과연 옳은가?"라고 반문하며 필멸의 존재로서의 죽음의 순간을 인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자신의 행운을 기뻐하기도 한다. "고통은 구원이 아니라 해악이며 삶의 의미는 고통 없는 것에 있다"라고 말하면서도, 죽음의 순간에 "목마른 채 죽는 것은 영원한 삶이다".
디테일과 역언법의 조화
작가는 갈증이라는 단어에 반대말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역언법이란 말하고 싶지 않은 척하며 말하는 수사법을 말한다). 그리고 역언법을 통하여 자신만의 통찰을 보여준다. 역설적인 상황 속에 진리가 숨어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예수(님)의 '갈증'을 소설의 핵심 소재로 삼은 것이 아닐까? 아멜리 노통브의 표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악마보다 악마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더 무섭다"
"원망과 분노는 사랑에 의해 허락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바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증거는 그가 온전히 이기적인 평안에 전념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지, 희생이 아니다"
위의 문장 외에도, 디테일하고 참신한 표현들은 공감가는 것들도 많았고, 놀라운 것들도 많았다. 모두 옮기자면 지면도 부족하고 저작권에도 위반될 것 같아. 다 전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한 문장만 더 전하자면,
"어머니의 아들인 것은 절대적인 축복이다"
이 표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요즘 세태에 따르면 어떤 어머니인가에 따라 다른 해석도 가능하겠지만, 나에게는 그렇다)
나가며
예수(님)의 생각은 완전한 상상력으로 지어졌다. 종교적으로 접근한다면 문제시될 것이다. 이 책에는 종교의 차원을 벗어나서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왜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고통과 상실을 두려워하는 것뿐은 아닐까? 그렇다면 고통과 상실은 '삶'이지, '죽음'이 아니지 않을까? 우리는 어쩌면 죽음 자체가 아닌 죽음으로 이르는 과정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닐까?
문학 작품에 관한 글을 쓰려니 결국 물음표만 던지는 수준에 불과한 내 글쓰기 수준이 드러나는 것 같다.
나도 지금 목이 마르다.
사이다가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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