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피트 데이비스
- 출판
- 상상스퀘어
- 출판일
- 2022.01.05
들어가며
이 책은 피트 데이비스라는 미국의 사회운동가가 쓴 책이다. 하버드 대학교 졸업식 연설 영상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으며 유명해졌고, 결국 책까지 낸 것 같다. 사실 나는 '전념'하고 싶어서 이 책을 읽었다. 스스로 무엇인가에 부단히 전념하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의 중반부까지는 정말 탁견으로 가득 찬 책이었다.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해 주었고, 나아가 우리 사회를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중반 이후부터 책장을 덮기까지 정작 '무언가에 전념하고 싶었던' 나에게 어떤 답을 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책을 제대로 못 읽었나 싶어 다시 읽었지만 마찬가지였다. 뭐가 문제인 걸까? 지금부터 피트 데이비스의 '전념' 책 리뷰에 전념해보고자 한다.

1. '간만 보는 태도'가 왜 주류가 되었는가에 대한 예리한 분석
우리의 삶은 유한하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찾아온다. 그래서 삶과 시간의 한계를 인정해야한다. 그 대신 시간을 '깊게'사용하는 데에 집중하는 삶이 바람직한 삶이 될 것이다.
저자는 오늘날 사회 문화의 주류가 '무한탐색 모드'라고 말한다. 채널을 시도 때도 없이 돌리고, 유튜브와 인터넷을 잠깐 보고 주의를 끌지 않으면 빠르게 넘긴다. TV시청이나 영상 시청뿐만이 아니라, 모든 삶의 결정에 있어서 이러한 패턴이 주류가 되어버리고 있다. 탐색행위로 버리는 시간이 정작 깊게 파고드는 시간보다 훨씬 많은 상태임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주류 문화가 되어버린 무한 탐색모드의 장점을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다. 최초의 경험의 연속, 기대 부응 의무의 부재,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대응 능력 제고, 가짜 자아에서의 해방감, 이해받을 수 있다는 느낌과 여유, 재미있음, 부담 없으며, 융통성이 있고 자신의 다양한 자아를 찾을 수 있으며, 새로움과 흥분을 준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꾸준히 무엇인가를 행하는 고통이 없고, 그것이 실패할 경우에 받을 위험도 존재하지 않는다. 경험을 중시하기 때문에 yolo라는 유행어가 생기기도 했다.
한편, 우리는 무한탐색의 삶을 '강요받는다'. 너무 빠른 사회의 변화, 그리고 너무 많은 선택지로 인하여 우리는 결정 마비에 걸렸다. 그동안 선택하지 못한 대안들이 축적되면서 미련이 축적되어 왔다. 거기에 애초에 가질 수 없었던 허구적 대안들도 존재하는데, 이에 현혹되어 헛된 아쉬움을 품고 살아가게 된다.(이미 헤어진 전 애인, 초고층빌딩 거주,내가 보유했었던 10 연상 주식 등). 여기에 새로움이 주는 흥분 뒤에 오는 '금단현상'을 겪으며, 계속 탐색할 수밖에 없다.
한 사회의 '주류 문화'가 된다는 것은 그 방식이 갖는 단점이 오히려 장점으로 탈바꿈하여 사회에 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탐색 모드 삶'이 미국 사회, 나아가 세계 사회의 주류 문화가 되면서 상실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저자는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핵심 주장은 변화에는 꾸준함이 필요하고, 변화는 천천히 일어나며, 관계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어떤 수단, 전략, 프로그램보다 본질적으로 더 중요한 경험과 헌신을 강조한다.
2. 파멸은 '꾸준함'이 상실될 때 찾아온다.
현대 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액체화-일반화는 고유의 다양성과 가치를 상실하게 한다. 모든것이 최적이기를 바란다면, 그 어떤 것도 특별할 수 없다. 공동체의 상실은 인간의 배제, 책임감 결여, 헌신하는 관계형성의 부재를 불러온다. 결국 시장논리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사회적 자본(신뢰, 관계)가 감소하고 있으며, 사명은 효율성으로, 도덕은 중립성으로, 명예는 무관심으로 대체되고 있다. 개성은 강조되지만 역할은 무시받고 있다. 개성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구분하는가로 정의되는 정체성이며, 역할은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하는가에 대한 정체성이다. 다른 사람과의 연결된다는 것이 사적인 염려, 욕망을 공유하는 것으로 평가절하되었다. 그로인해 친밀함의 독재가 나타나 비도덕적 가족주의가 판치게 되었다.
영화, 드라마를 보면 비자발적 헌신과의 투쟁을 그리는 작품들이 많다. 자유,해방에서 감동을 얻고, 그걸로 대부분의 영화는 끝난다. 그런데 자유만으로 충분한가? 해방 이후, 자발적 헌신, 창의성, 신념, 통합, 영감 등이 필요하다. 해방하는 방법에 덧붙여 헌신하는 방법을 배워야 함에도, 이에 대한 관심은 사그라들었다.
무한 탐색 모드로 인하여 발생하는 무소속감과 고립감(아노미)로 인하여 공동체의식도 상실되어가고 있다. 그로 인해 신성한 사회의 자산인 공동의 사명과 책임감이 사라지고 있다. 또한 세상과 깊이 있는 관계가 맺어지지 못하고 피상적인 관계만이 존재하게 되었다. 그로 인하여 판단력과 품성, 의지의 근원인 집중력이 상실되고 있다.
이렇게 상실되어가고 있는 것들을 되돌리고, 균형을 찾기 위해 '전념하기'의 반문화를 가져야 한다. 존재와 삶에 대한 불안(불확실성,흐릿함,복잡성,혼잡성,근본주의의 거부)이 허무주의, 마비된 것, 뇌동상태를 야기한다. 이를 맞서기 위해 '죽음'의 유한성에서 부분적인 확신과 끝없는 시도, 구현, 관찰이라는 '전념'을 도구로 삼아야 한다
3. 전념하지 못하는 이유를 극복하기 위한 제안
저자는 전념하지 못하는 이유를 세가지 제시했다. 첫째, 후회에 대한 두려움이다. 무엇인가에 전념했다가 혹시 잘못된 선태이었다면 어떡하냐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저자는 부담감을 내려놓고, 감정에 충실하라고 말한다. 일단 실행하고, 사명감을 갖고 주변에 공표하라고 말한다.
두 번째 이유는 유대의 두려움이다. 무엇인가에 깊게 엮임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이나 개성이 훼손될까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자아는 원래 혼자서만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한다. 타인과의 관계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이 자아이기에, 타인과의 관계를 통하여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역설한다. 처음에만 불편하지, 익숙해지는 감정이라고 말한다.
세 번째 이유는 고립의 두려움이다. 특정 한 가지 대안에 집중하면서 다른 수많은 대안을 놓치고, 많은 관계를 잃게 될 것 같다는 감정을 말한다. 이에 대해서는 목적을 중심으로 선택하되, 내면을 깊게 관찰하여 통찰을 획득할 것을 제안한다.
이 밖에 무엇인가에 전념하는 행위는 지루함-불확실성-목표변질-피로-고통 등의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신성한 불만'을 가져야한다. 자기 발전을 추구하라는 말이다. 경계의 초월, 깊이의 새로움을 인식하는 데 집중해야한다. 선택은 곧 버리는 것이며,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 할 일 목록을 만들고, 그중 제일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해야 한다.
장단점을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냥 느끼고 자신의 가치기준에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가치의 발견은 내가 어떠한 삶에 감동하고, 무엇을 꺠우치고자 하는지 관찰해야 얻을 수 있다.(이냐시오적 식별)
덧붙여, 행동으로 옮겨야 무엇을 원하는지 온전히 알게 된다. 하고 싶은 것이 거창할 수록, 허점도 많아진다. 따라서 단순함의 강렬한 힘이 필요하다. 올바른 선택을 하려고 하기보다, 올바른 선택이 되도록 하는 데 집중해라. 사소한 골칫거리는 큰 목표 앞에서 사소해진다.
"처음에는 무시할 것이고, 이후에는 비웃을 것이며, 다음에는 싸울 것이다. 그리고 승리할 것이다."
4. 강약 조절 실패의 아쉬움 : 모순의 발생과 잔소리 효과
책의 중반부 이후에서는 명예 문화의 회복- 멘토 및 도제 문화-위인과의 동일시 등을 통환 애착과 신뢰 관계의 형성 등의 제목을 붙여 여러 사례들과 함께 논의한다.
저자 나름 좁은 시야가 아닌 넓은 시야의 책을 제공하고자 노력한 것이 보인다. 그런데 필자는 오히려 이 부분을 읽으며 앞에서부터 쌓였던 불만이 터진 것 같다. 내용이 와닿지 않고 '글을 위한 글'을 읽는 느낌이 들었던 것은 왜일까? 아마도 많은 사례들을 를 병렬식으로 열거하면서 제시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결국은 '전념하라'는 말 밖에는 기억에 남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찾고 싶었던 것은, '너 지금 잘 하고 있어' 혹은 '전념하다가 안되면 이렇게 하면 돼'라는 말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저자는 계속 다른 얘기를 한다. 숲을 만드는 사람들, 차별금지 운동을 하는 사람들, 환경오염 물질 배출과 싸우는 사람들, 그 외 온갖 인물들이 나온다. 그들의 성과가 대단하다. 자기가 아는 모든 사람을 다 적었나 싶을 정도다.(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누군가 1000명이 넘는다고 써 놨다.)
이렇게 많은 사례를 '탐색'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모순을 발생시킨다. 책 초반에 그토록 '무한 탐색'을 성토하면서 논의를 전개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작 그 사례들을 보면 필자가 실제로 관심있는 분야의 사례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성의를 봐서 열심히 읽었지만, 그들 중에 정말 공감 가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래도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와 오늘날 한국 사회 상황의 차이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는 굶어 죽을 걱정보다는, '그렇게 살고 싶진 않다'는 이유로 취직을 못하고 있는 청년들이 대부분이다. 상대적 박탈감을 일으키는 사건들이 반복되면서 청년들의 전념 의욕 자체가 없어진 것이다. ("역행자"라는 책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자청은 이러한 사회적 불만의 목소리에 응답하여 스스로 노력하는 법, 성공하는 법에 집중했고, 그것이 히트를 쳤다)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지만 결국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 귀결되는 이야기는 결국 '잔소리'밖에 되지 않는다. 과도한 잔소리는 자신의 애정을 표현하기에는 충분하지만, 정작 원하는 효과를 얻는 데에는 치명적이다. 죄책감과 반발심만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 감정들을 억누르느라 독서 에너지를 소진했다. 폭 넓은 사례 제시에 힘을 너무 쓴 것이 아닐까? 사례를 줄여서 깊이 있게 논의하거나, 사례들을 꿰뚫는 강한 연결고리가 부족했다.
5. 추가적인 논의의 가능성들
책은 독자와의 대화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예상되는 비판과 질문까지 생각하고 책을 썼어야 했다. 예를 들면 수년 전 읽었던 "넛지"의 저자는 비판 의견에 답하고 설명을 덧붙이기 위하여 다시 책을 펴냈다. "박테리아에서 바흐까지, 그리고 다시 박테리아로"의 경우(책 읽기가 무척 난해했다), 자신의 이론과 주장을 위하여 예상되는 질문과 비판에 대하여 120여 쪽 넘게 지면을 할애해서 설명하려고 애쓴다.
그런데 피트 데이비스는 이러한 논의 없이 서둘러 책을 끝내버렸다. 글을 통해서도 바빠보이는 것이 느껴지는데 혹시 마감에 쫓긴 것은 아닐까? 정말 '전념하라'는 말 외에는 다른 할 말이 없던 것일까?
ADHD처럼 전념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이유와, 그것을 극복한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혹은, 잘못된 전념으로 인하여 오히려 삶을 망치는 사례도 존재하지 않는가?(도박, 게임 중독 등) 서로 다른 전념하는 가치가 충돌하는 경우의 해결책 모색 방안은? 전념과 편향은 어떻게 구분해야 하고, 어떻게 방향성을 잡아야 할까? 무엇에 전념해야 하는가? 전념하기 위한 충분한 탐색은 필수적인 과정이 아닌가? 지나치게 탐색-전념을 대립구도로 잡은 것은 아닐까?
-책을 읽으며 적은 노트에서 발췌, 필자가 이 책에서 더 듣고 싶었던 이야기였던 것 같다.-
전념할 수 있기 위해 필요한 과정으로서의 '탐색'의 중요성, 전념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도와줄 사회적 안전망, 전념의 실패에 대한 예측과 대비책 과 같은 내용이 책에 함께 있었다면, 분명히 더 좋은 책이 될 수 있었다. 최소한 '전념하라'는 저자의 말이 정말로 힘 있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전념했다가 실패한 이야기와 그 극복'을 반드시 다루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대학생들이 1학년 때 미친듯 노는 이유는 고등학생 때까지 공부하라는 잔소리만 들었고 이유도 모른 채 노력했었기 때문이다. 필자 또한 평생에 걸쳐 '공부하라'는 말에 충실했다. 그리고 지금도 내면에 깊게 박힌 그 목소리는 삶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 왜 공부해야 하는지,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를 먼저 명확히 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 책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간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너무 많은 힘을 쓴 느낌이다.
마치며
책이 전체적으로 논리적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번역서 답지 않게 잘 읽혔던 책이었다. 글 쓰는 실력이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 오늘날 주류 문화현상인 '탐색하기'와-'공동체의식 상실'에 대하여 잘 진단하고 세부적으로 분석했다. 예리한 통찰이 빛났고, 그 해답으로 제시한 '전념하기'또한 공감이 많이 가는 책이었다.
다만 아쉬움이라면 책의 중후반부의 구성적 측면에서 사례들이 너무 많았고, 연관성이 부족했다. 책을 산만하고 지루하게 하며, 이 책조차 '무한 탐색'모드에 빠져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건진 수많은 교훈에 비하면 작은 아쉬움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가장 소중하다"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지루하기도 하고, 불안하고, 고통스러울 수도 있는 시간의 축적을 거쳐야만 진정한 무엇인가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은 오래도록 지켜져온 법칙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술의 발전으로 탐색비용이 더 감소했음에도 오히려 탐색에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는 아이러니를 깨우쳐 주었고,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을 상기시켜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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