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작가가 전하는 '작별인사'의 여운을 맛보다
이 책이 출판된 것은 작년 5월이다. '작가의 통찰력'이란 말을 알고는 있었지만, 새삼 실감하게 해 준 책이었다. 김영하 작가님은 2023년에 인공지능 이슈가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터질 줄 알고 있었을까?
소설은 비록 픽션이지만, 분명 그 시대를 반영한다. 사람들의 고민과 고통, 기쁨과 먹고사는 문제들이 모두 작품에서 나타난다. 무엇보다 작가의 시선과 목소리를 통해 시대의 흐름을 읽게된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 것은 재미있다.
너무나 인간에 가까워 자신이 인간이라고 착각하는 AI, 철학과 예술을 배운 인공지능, 필멸의 존재라는 것 외에는 인간과 다를바 없는 인공지능의 설정과 더불어 사건 전개에 있어서 속도감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인공지능과 로봇의 이야기는 책으로도, 영화로도 많이 다루어진 재료이다. 하지만 김영하 작가만의 조리법으로 만들어진 이 책은 특유의 여운을 남기는 책이었다.
- 저자
- 김영하
- 출판
- 복복서가
- 출판일
- 2022.05.02
sf 상상력이 갖는 허무맹랑함의 비린내를 철학적 고민으로 잡아내다
책장을 덮으며 잘 만들어진 생선 요리를 먹은 느낌이 들었다. 김영하 작가는 역시 숙련된 요리사임이 분명하다. 반전 장치와 극적인 설정을 통하여 SF장르 특유의 속도감과 기발함을 잘 살려냈다. 슈퍼맨, 아이언맨 등, 잘 만들어진 SF장르 작품들의 특징은, 진지한 존재론적 고민을 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왜 그런 것일까? 그것은 SF 장르가 갖는 한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장르 설정상, 실제 현실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것을 '작품이니까' 가능한 세계를 그려나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필연적으로 상상의 비약이 이루어지고, 만능적 능력, 우연적 전개가 이루어지게 된다. 필자는 SF장르에서 나는 이런 '비린내'를 못 견디는 편이다. 그런데 이러한 비린내를 김영하 작가는 인간 존재에 대한 고민이라는 재료를 첨가하여 제거했다. 이를 위해서는 등장인물의 설정과 사건을 통하여 짜임새 있는 개연성을 부여해야 한다. 여기에서 작가의 관록이 느껴졌다. '철이'의 성장과 각성과정을 보여주면서, 그리고 '달마'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리고 다른 많은 등장인물을 통해서 인간을 '보여주고', '들려주고' 있었다.
아쉬움이라면 다소 '흐릿한' 느낌이 강했다는 점이다. 책을 덮고나서 그 흐릿함이 뭔지 명확히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저 '그럴 듯한 이야기' 정도의 선에서 그치고 있는 걸까? 김영하 소설가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시련과 싸우는 것'을 이 책에서 보여준 것인가? 들려만 준 것인가?라는 물음표를 메모해 둔 것이 눈에 뜨인다. 하지만 그쪽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작가에게 문제와 답을 요구하는 나의 나쁜 버릇이 또 나오는 것 같다.)
결국 그 '흐릿함'이 이 작품을 읽는 묘미였다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생선요리 특유의 비린내를 잡아내면서도, 바다의 내음은 남겨둔 것 같다고나 할까? '어차피 상상의 이야기'라는 허무함은 잡아냈지만, 또 다른 종류의 허무함을 남겨주기 때문이다. '작별인사'라는 제목이 특히 그러한 느낌이 더 은은히 남아돌게 해 주는 것 같다.
《검은 꽃》에서 나타났던 '갇힌 공간'의 재등장
사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 갇혀있는 AI들의 모습을 그려내는 장면이었다. 작품 속 세계관의 변화를 위한 과도기적이면서도, 치열한 고통과 생존의 공간이자, 모순적인 공간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 공간에서 그려지는 장면들을 읽으며 내심 반가웠다. 필자가 김영하 작가의 또 다른 작품 《검은 꽃》을 '제대로 읽었었구나' 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필자가 발견한 김영하 작가의 서술상의 기법적 특징이라고나 할까. 아래의 인용문을 보자.
기존의 윤리와 질서체계가 지워지고 있으며, 윤리의식으로부터도 자유롭게 된다는 점에서 (만약 노비의 신분의 인물에게는) 일포드 호가 해방의 공간, 자유의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인상적인 것은 이러한 자유와 해방의 모습이 아이러니하게도 극한의 고립과 답답함이라는 설정의 공간 내에서 나타난다는 점이다.
-《검은 꽃》책 리뷰 포스팅 중에서-
https://jahyo.tistory.com/23
(책리뷰)김영하의《검은 꽃》: 담담히 전해주는 씁쓸한 이야기
들어가며 - 특별한 의미를 가진 책 (그 분은 모르겠지만) 김영하 작가와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이 책은 여러번 읽었던 소설이다. 이 작품은 1905년에 멕시코로 이주한 조선인 이민자 1033명에 대한
jahyo.tistory.com
(굳이 포스팅 주소와 인용문을 쓴 이유는, 사실 저 포스팅을 읽은 분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 다시 읽어보니 고쳐서 다시 써야 할 것 같다. 구성도 산만하고 너무 '공간'에 꽂혀서 쓴 것 같다
자의가 아닌 '갇혀있는' 상황에서 등장인물들은 죽느냐 사느냐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아수라장이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서로가 치열하게 생존 경쟁을 벌이게 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인식과 각성이 이루어진다는 점도 같은 특징을 갖는다. 진화의 관점에서 어쩌면 필수적인 '자연선택'의 과정이 아닐까? 그리고 이러한 공간적 특징은 두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여야 한다.
-헤르만 헤세, 《데미안》 중에서-
새가 태어나기 위해 투쟁해야 하는 알 처럼, 억압된 공간이자 해방의 공간, 그리고 죽음의 공간이자 탄생의 공간이다.
인간이 아닌 입장에서 인간을 생각하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작가의 목소리를 찾아보려고 힘썼다. 작품 속에는 주옥같은 대사들이 참 많았다. 작가는 많은 등장인물들의 대사에는 무게감이 있었다.
"이야기란 현실을 망각할 정신적 마약이다"
"허락된 모든 것을 동원해 시련과 싸우는 것"
"높은 수준의 의식과 언어를 가진 존재만이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가 의식을 더 높은 수준으로 고양시킨다.."
"인간의 존엄성은 죽음을 직시하는 데에서 온다. 도태과정의 저항은 그저 본능일 뿐, 악한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은 선악의 구분 없이 조건과 상황일 뿐이다"
결국 소설처럼 인공지능이 극도로 발전하여 이들과 구분되는 인간성이란 것은 결국 '죽는다'라는 것만 남는 미래가 오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상황이 왔을 때, 결국 인간이란 무엇일까?
나는 위의 질문이 이 작품의 핵심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인공지능 이야기로부터 오히려 인간성에 대한 고민, 나아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결국 드러나게 된다.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의 시각에서 인간의 삶과 죽음'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인공지능들의 이야기들은 인간에게 일침을 가하고 있는 것만 같다. 인간이 아닌 입장에서 인간을 정의하면 어떻게 정의하게 될까? 다만, 인간과 완벽히 비슷할 정도의 존재이지만 인간은 아닌 존재의 입장이라면?
작품 중에서 '인간을 멸종시킬 필요가 없다. 그것은 인간성을 AI에 투사한 것일 뿐이다'라는 대사에서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 드러나고 있다. "인간은 바이러스다"라고 말했던 영화 매트릭스의 스미스요원의 대사처럼,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것 같다.
마치며
책을 덮으며 내가 느낀 공허함은 처음에는 결말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다음에는 작가가 뭔가 답을 해주지 않았다고 생각하였다. 글을 쓰며 다시 생각해 보니 작가는 많은 예시답안과 질문들을 던진 것을 깨달았다.
'필멸의 존재'라는 말이 갖는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삶은 더없이 짧다. 따라서 매우 열심히 그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인간에게 시간은 가장 귀중한 것이다. 작가는 "늘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두려워할 뿐, 유일한 실재인 현재는 그냥 흘려보내고 있지는 않습니까?"라고 경고하는 것은 아닐까?
작가는 '모든 것을 걸고 싸워라'고도 말해주었고, '신선처럼 살다 죽는 것'도, '이야기라는 마약에 탐닉하는 것'도 현재를 잘 보내는 하나의 방식일 것이다.
'생각은 이명일뿐이다'라고 했던가? 나의 머릿속은 온갖 상념과 물음표가 가득 차 있었다. 결국 물음표는 존재하는데, 답은 없는 상황에 대한 부재의식이었던 것 같다. 지금 당장 무엇을 먼저 해야 할까?. 작가가 전하는 '작별인사'는 누구에게 하는 것일까?
이 책을 읽고 생각이 너무 많아졌다. 그런데 읽는 재미도 있었다. 더할 나위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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