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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삼국지의 세계에 다시 한 번 다녀오다: 천 위안의《심리학이 조조에게 말하다》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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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며: 심리학적 틀로 삼국지 인물을 분석하는 책

이 책은 삼국지의 인물 중, '조조'의 행동을 분석하여 심리학적 지식을 전해주는 책이다. 심리학적 개념들을 삼국지 속의 인물인 조조의 일화를 예를 들어서 설명하였다. 조금 아쉬운 것은 목차와 내용이 조금 맞지 않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었다. 아마 중국어판 원작을 한국어판으로 편집하는 과정에서, 목차를 잘못 잡은 게 아닌가 싶다. 목차만 놓고 보면 자기 계발서인데, 막상 내용을 읽어 보면 심리학 교양서랄까. 목차와 내용이 조금 안맞는다. 하지만 그 내용 자체는 재미있었고 유익했다. 삼국지를 심리학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다시 읽을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삼국지를 상당히 여러 번 읽은 나조차 그동안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들을 배우게 해 준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가치가 충분했다. 1편과 2편 두 권으로 되어있는데, 두 권 모두 금방 읽었다. 

삼국지를 3번 이상 읽은 사람과는 적으로 상대하지 마라.

이 말은 왜 나온 것일까?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이 수백 명이 넘는다. 그리고 이 수백 명의 인물들이 제각각의 개성과 가치관, 능력을 가지고서 서로 의리를 지키고 배신하며, 죽고 죽인다. 그 과정을 그저 재미있게 읽어가면서 우리는 권모와 술수를 배우고, 명분과 의리, 실리와 배신을 배운다. 이것이 삼국지의 위대한 점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책이다. 조선 후기에는 과거시험의 문제로까지 등장했었다고 하니, 그 인기가 얼마나 많았는지 실감할 수 있다.

나는 삼국지를 최소 30번 이상 읽었다. 사실 몇 번 읽었는지 모르겠다. 사실 내 생애의 본격 독서도 만화 삼국지를 읽으면서 시작되었다. 초2 때쯤이었을 것이다. 이모댁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읽은 삼국지를 통하여 독서의 재미를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는 무조건 '촉빠'였다. 유비, 관우, 장비 그리고 제갈공명과 조자룡까지. 정말 멋지고 매력적인 인물들이 촉나라 진영에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소설 삼국지(나관중이 지은 소설)와 정사 삼국지(역사로 기록된 삼국지)의 내용이 다르며, 소설은 촉나라 진영에 편향된 내용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인터넷을 통해 보다 폭넓은 지식을 접하게 된 덕분이었다. 즉시 도서관을 찾아가 정사를 읽었다. 선악 구조가 분명한 소설과는 달리, 정사에서는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역사서의 형식으로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정사 삼국지를 읽고 나서는 정사 역시 편향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아마도 역사는 승자 관점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관련 삼국지 커뮤니티 등에서는 다양한 논쟁이 있어왔다. 하지만 나는 둘 다 '좋은 이야기'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진실된 이야기일수록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좋은 이야기가 굳이 100% 팩트로 구성될 필요는 없다. 재미와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면, 일단은 이야기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것이다. 이 책은 정사보다는 삼국지연의의 내용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심리학적 근거와 함께 다시 분석해 보는 조조의 성격

조조라는 인물은 어릴 땐 그저 주인공 유비의 강력한 라이벌, 타도해야할 빌런 정도의 이미지였다. 하지만 삼국지를 여러 번 읽으면 읽을수록, 주인공 급의 활약과 비중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유튜브에 인기를 끌었던 '드래곤볼 베지터의 재발견' 과는 그 스케일이 다르다. 훨씬 중심적이고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다. 나는 삼국지를 두 파트로 나눈다면 유비의 죽음 이전과 이후로 나누고 싶다. 전편의 주인공은 조조와 유비(유비와 조조가 아니다), 후편의 주인공은 제갈공명일 것이다. (극히 개인적인 생각임을 밝혀둔다)

조조의 일반적 이미지는 꾀도 많고 의심도 많으며, 야망을 품고 그것을 실현할 능력을 지닌 인물이다. 여우 같으면서도 늑대 같은 인물이랄까. 하지만 이 책의 렌즈를 통해서 다시 보게 된 조조는 자기 자신을 숨기지 못하고, 거짓말을 못하는 인물이면서 또한 겁도 많다. 차라리 곰에 가깝다. 게다가 남을 덥석덥석 믿어서 크게 낭패를 보기도 한다. 저자에 따르면 의심많은 조조는 자신이 많이 속았던 과거 때문에 생긴 습관이다. 상처가 있기에 계속해서 상대의 배신 여부를 확인하게 된다. 조조의 의심은 자신이 가진 상처를 핥는 본능적인 '그루밍'이었다.

게다가 조조는 자존감이 낮다.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부하로 두고 싶어했지만, 너무 뛰어나면 의심하고 죽이기를 일삼았다. 조조의 자존감을 건드린 사람들은 대부분 죽었다.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고집을 부리는 장면들이 나온다. 그리고 그 결과는 더 큰 실패를 가져오기도 했다.

조조의 인재 욕심은 유명하다. 그런데 특히 가질 수 없는 존재, 관우에 대한 집착을 드러낸다. 관우가 조조에게 절대로 가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조조가 갖고 싶어 했다고 말할 수 있다. '가질 수 없는 걸 알기에 갖고 싶은 존재'인 것이다. 관우가 떠나는 장면에서 마지막까지 질척댄다. 하지만 결국 관우는 떠나게 된다. 이미 떠난 사람에게 뜬금없이 작별 선물로 비단옷을 보내주기도 한다. (떠나는 이에게 추한 모습이 아니라 아름답게 보내주었기 때문에, 관우는 평생 조조를 잊지 못하는 심리적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우리들의 연애와 이별에도 이런 일이 많지 않나 싶다.) 

거짓말도 잘 못하고, 겁도 많으며, 자존감이 낮고, 욕심은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사람. 이런 인물에 어떻게 넓은 천하를 대부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일까? 

심리면역력, 조조가 가진 최고의 무기

조조는 신중하면서도 결단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결단력 없는 신중함은 겁쟁이일 뿐이고, 신중함 없는 결단력은 만용일 뿐이다. 신중함과 결단력은 모두를 갖추었을 때 빛을 발한다. 그리고 조조가 그러한 인물이다. 나는 조조 최고의 강점이 이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조조의 대담함과 신중함이 발휘되었을 때마다 결과를 놓고 보면 참담한 결과를 가져온 경우가 많았다. 지나친 결단력으로 은인을 오해하여 죽이기도 하였고(여백사 사건 등), 지나친 신중함으로 상대에게 속기도 한다(장판교 사건 등). 전체 시도 중에서 대략 절반 가까이 되는 실패를 겪었다. 그럼에도 조조는 점점 세력이 강해졌다. 왜일까? 인재를 중시하고, 성과를 바로 보상하는 태도 등, 다양한 이유가 있다. 이 책에서는 심리학적 측면에서 '심리면역력'을 그 이유로 들고 있다.

이게 무슨 말일까? 조조는 커다란 실패를 할 때마다 상대를 비웃었다. "나였으면 여기에도 복병을 두었을 것이다. 제갈공명의 어리석음이 나를 살렸다" 등등... 껄껄 웃는다. 참패하고 도망쳐 온 부하를 용서하며 "승패는 병가지상사(이기고 지는 것은 항상 있는 일이다)"라고 말하며 용서하기도 한다. 눈물과 웃음 중에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대실패를 겪은 상태에서 이렇게 웃을 수 있을까? 물론 정신 승리와 체면 치레를 위한 연출일 수도 있다. 설령 연출일지라도 이렇게 하기는 쉽지 않다. 이 책에서는 이것이 '심리 면역력'이라고 말한다.

심리 면역력 파트를 읽으며 지난번에 포스팅했던 《자기관리론》이 생각났다. 불운을 대하는 방법에 있어서 '피할 수 없다면 우아하게 받아들이라'라고 말했던 책이었다. 저자는 데일 카네기와 같은 주장을 한다. "순응도 운명에 맞서는 하나의 방법이다"라는 것이다. 또한 임기응변이 매우 강한 모습을 보이는데, 이 또한 심리면역력이 뒷받침해 주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위기와 실패를 맞이하여 도망칠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고육지책일지라도 해결책을 강구할 수 있게 된다. 불행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극복해 내는 능력. 그것이 조조의 성공의 가장 큰 힘이었다.

풍부한 사례를 통한 심리학적 개념들 

삼국지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둘이서 이야기를 나눈다면 밤을 새울 수도 있다. 삼국지에는 그만큼 풍부한 사례들이 존재한다. 이 책은 그 사례들을 이용하여 심리학적 개념들을 설명한다. 노트에 필기한 내용을 모두 공유하고 싶으나, 분량이 너무 많고(필사하며 읽는 습관을 고치고 싶은데, 잘 안된다) 또한 저작권에도 피해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그냥 지나치기도 뭐해서 간략하게만(?) 적고 넘어가겠다.

인지부조화 : 신념-현실인지의 불일치상태이다. 제거하려 반사적 행동을 하게 된다.
노출 호혜의 효과 : 상대를 알기 전에 자신을 드러내지 마라. 
맹세하기vs요구하기 : 신뢰를 얻고 싶다면 약속하기보다는 대가를 먼저 요구하는 것이 심리적으로 유리하다.
기본적 귀인 오류 : 상황 과소평가하고, 특수성을 과대평가하는 속성
투명도 착각 :자기중심적 사고와 자의식 과잉으로 인하여 상대방이 나의 속마음을 안다고 착각.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면 내 행동반경이 좁아진다.
범주화의 오류 : 공통되는 속성 중심 분류->'편견'형성
부탁하기 전략(큰 부탁 이후, 거절된 후 쉬운 부탁 하기)
하소연을 하면 호감을 잃는 이유 :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속죄양 : 맹목적 순종과 주관 없는 모습은 상사의 속죄양이 되기 쉽다.
착각 상관 :전혀 관련 없는 두 사물을 연결, 인과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심리현상을 말한다. 우리는 일의 규칙을(과거) 만들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입하여 예측하기를 좋아한다. 이는 착각 상관일 뿐이다.

과잉정당화 효과, 루시퍼 효과, 선견지명, 실수효과, 반사실적 사고, 휴리스틱스, 방관자 효과, 자기 위주 편향, 꼬리표효과, 초두효과, 선견지명, 첫인상효과, 마감효과, 귀인오류, 자기실현적 예언, 학습된 무기력, 선택적 지각, 생존자의 죄책감 등..

적어놓고 보니 정말 많은 심리학 개념들이 사용되었다. 이걸 다 받아 적은 나도 대단하다..

거짓말할 때 나타나는 다섯 가지 증상에 대한 내용은 조금 더 자세히 언급하고 싶다. 이 부분이 가장 흥미로운 대목이었기 때문이다. 저자인 천 위안은 원소군의 비밀을 가지고 항복하러 온 허유와 조조의 만남 장면을 분석했다. 조조는 허유에게 거짓말을 하다가 들키고 만다. 저자에 따르면 거짓말할 때 상대방을 관찰하면, 다섯 가지의 특징이 나타난다.

일단 말의 속도가 빨라진다. 또한 스트레스가 증가하기 때문에 기분이 안 좋다. 상황을 인식하는 디테일한 인지능력이 떨어지게 되며, 그로 인해 반사적으로 떠오르거나 익숙한 정보만을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거짓말에 대하여 당사자가 죄책감이 없다면, 거짓말임이 드러나기가 어렵다. 또한 나, 내, 우리라는 대명사로 된 자기 지칭 표현은 무의식적으로 거짓말에서는 잘 나오지 않는다. 

마치며 : 내가 세상을 저버릴지언정, 세상이 나를 저버리지 하게 않겠다!

삼국지에서 거의 조조의 첫 번째 악행 이후에 내뱉는, 유명한 조조의 대사이다. 이를 시작으로 조조는 악역을 맡게 된다. 사람들인 이 대사가 조조의 잔혹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격을 드러내 준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의 분석에 따르면, 조조는 비난을 피하기 위하여 자기 방어에 힘쓴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에 있어서도 서툴렀다. 자신의 이미지를 망쳤기 때문이다. 그 내용에 있어서도 배신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드러난다. 하지만 그 두려운 마음을 떠안고 자신이 주도권을 쥐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다.

성과주의와 인재중시, 대담함, 신중함, 적시의 적당한 보상, 잔꾀, 이미지를 자극하는 화법 등 조조는 강점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자존감이 낮고, 남에게 잘 속으며,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욕심이 지나친 단점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강한 심리적 백신, '심리면역력' 덕분에 승리할 수 있었던 인물이었다. 

한편 책이 말하고자 하는 일관성에 관한 생각도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의 정체성은 자기계발서와 심리학교양서의 어중간한 색을 가지고 있었다. 블로그 용어로 표현하자면 SEO가 조금 안맞는 느낌이랄까? 가장 큰 이유는 책의 목차와 콘텐츠의 조화가 살짝 깨졌기 때문이다. 또한 중간 중간에 글 전체의 일관성에서 벗어나는 내용들도 끼워넣어져 있었다. 아마 중국 서적의 번역서라는 점과, 2권 짜리 분량의 책이라는 점에 그 원인이 있지 않을까 싶다. 블로그에 글을 쓰고 고쳐쓰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내가 학습한 능력같아 뿌듯하다. 전체적인 통일성과 흐름이 깨지면, 독자 입장에서는 글이 산만해 진다. 전에는 이러한 생각을 하지 않고 책을 읽었었다.

그동안 여러 번 읽었던 삼국지를 전혀 다른 방법으로 읽는 법을 배웠다는 데에 큰 만족을 느낀다. 심리학은 재미는 있지만 너무 많은 개념들이 많고, 내용을 알아도 일상에서 그때 그 때 떠올리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내가 잘 아는 소설인 삼국지 속의 조조라는 인물의 말과 행동 속에서 찾아보니 온통 심리학적 분석 대상들이었다. 심리학적 지식을 부담 없이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조조가 심리전에 능했던 이유는 심리 면역력이 강했기 때문이 아닐까? 심리학에 대한 호기심이 샘솟는다.  관련한 다른 책들을 찾아보아야겠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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